우리나라 사법 질서의 한 축인 변호사들이 징계의 늪에 빠졌다. 도박을 한 변호사부터 ‘전문’이라는 용어를 무단으로 사용한 변호사들까지 대한변호사협회의 징계를 피해 가지 못했다.
울산지방변회 소속 임모 변호사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해외 카지노 도박장을 연결하고 상습적으로 도박을 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는 그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는데 임 변호사는 지난 3월 과태료 500만원 처분을 받았다.
임 변호사의 징계에 대해 대한변협 관계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기 보다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인다"며 "다른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약한 수준의 처벌은 아니다"고 했다.
21일 대한변협에 공개된 ‘변호사 징계내역’을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수 분석한 결과 총 69명의 변호사가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견책 4명, 정직 26명, 과태료 처분 39명으로 집계됐다. 변호사법상 징계는 △영구제명 △제명 △3년 이하 정직 △3000만원 이하 과태료 △견책 등 모두 5가지로 나뉜다.
징계를 받은 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과태료 금액은 최저 100만원부터 1000만원까지 달한다. 과태료는 주로 △품위유지의무 위반 △성실의무 위반 △광고 규정 위반 △겸직금지 규정 위반 △공직퇴임변호사 수임제한 위반 등을 저질렀을 때 받게 된다.
뺑소니를 저지른 서울지방변회 소속 이모 변호사는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해 과태료 300만원을 받았다. 이 변호사는 교통사고를 낸 뒤 즉시 정차해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지방변회 소속 유모 변호사의 경우 의뢰인과 사건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수임료를 받고도 소송 등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유 변호사가 성실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대한변협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광고 규정을 어긴 변호사들도 과태료 처분을 피하지 못했다. 서울지방변회 소속 방모 변호사는 대한변협에서 규정한 전문분야 등록을 하지 않고 ‘전문’이란 표현을 버젓이 사용해 과태료 100만원을 처분받기도 했다.
서울지방변회 소속 도모 변호사의 경우 법률사무 수임을 목적으로 인터넷 카페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재판이나 수사에 종사하는 공무원과의 친분관계를 드러냈다. 대한변협은 지난 7일 변호사법상 금지된 공무원과의 연고 및 사적관계를 드러낸 도 변호사에게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했다.
과태료 처분보다 한 단계 높은 처분인 정직은 주로 본인 명의를 대여한 변호사들이 받았다. 총 12명의 변호사가 명의를 대여했는데 이 중 11명이 정직 처분을 받았고 단 한 명만 과태료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단, 정직 기간은 2개월을 넘지 않았다.
명의대여는 모두 비(非)소송 분야에서 이뤄졌다. 특히 개인회생, 파산 사건의 경우 사건 처리가 쉽고, 변호사가 직접 법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특성상 명의대여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지방변회 이모 변호사의 경우도 ‘변호사가 아닌 자’에게 명의를 대여하고 개인회생, 파산면책 사건을 맡겼는데 해당 사실이 들통나면서 대한변호사회의 징계를 받았다.
올해 대한변협이 변호사법을 어긴 변호사에게 내린 징계 중 가장 높은 처분은 '정직 1년'이다. 서울지방변회 소속인 문모 변호사는 사건 의뢰인이 공탁금 명목으로 지급한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또 다른 진정인에게는 돈을 빌리고도 갚지 않았다. 이에 대한변협은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들어 문 변호사에게 정직 1년을 내렸다.
반면, 징계 수위가 가장 낮은 견책 처분을 받은 변호사는 4명에 그쳤다. 3명은 품위유지의무 위반, 1명은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했다. 특히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한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약 4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폭행을 하고도 견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2명의 변호사와 구치소 내 변호인접견실에서 반입이 금지된 물품을 수용자에게 전달한 변호사도 견책을 받았다.
현재 대한변협에 징계 신청이 접수돼 조사가 진행 중인 건도 있다. 지난 4월 서울지방변회는 의뢰인의 아내와 바람을 핀 것으로 알려진 정모 변호사를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의 혐의로 대한변협에 징계를 신청했다. 당초 지난 5월 중 징계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던 대한변협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건은 현재 조사 중이다"고 짧게 말했다. 향후 대한변협 징계위원회 결정에 따라 정 변호사는 과태료 처분 이상 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변호사들의 징계에 대해 대한변협 관계자는 "변호사법을 위반한 변호사의 형사처벌이 완료된 후 대한변협에서 자체적으로 징계를 내린다"며 "변호사들의 위반 행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징계 수위가 일괄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변호사법 시행령에 따라 징계처분을 받은 변호사들은 성명‧생년월일‧소속지방변호사회 및 사무실 주소‧징계사유 요지 등이 모두 공개된다. 처분에 따라 공개 기간은 달라진다. 징계를 받은 날로부터 영구제명이나 제명을 당하면 3년 동안 공개되고, 정직은 1년, 과태료 6개월, 견책은 3개월간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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