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불안감이 가진 힘은 무척이나 강력해서 크기로 따지면 전쟁, 기근, 자연 재난이 주는 고통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불안감은 제가 가진 힘에 비해 너무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방법으로 금세 해소되기도 한다. 바로 그 해결책은 ‘정확한 정보’다. 불안함이라는 감정은 대부분 정확한 ‘정보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최근 연달아 일어나는 자동차 화재 사고로 온 나라가 뜨겁다. 독일 수입차 업계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BMW’에서만 최근 몇 달 새 30여 건이 넘는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자동차 화재 사고는 BMW뿐만 아니라 브랜드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 에쿠스·그랜저(IG)·아반떼에서도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더니 르노자동차 SM5, 기아차 스포티지, 한국지엠 말리부에서도 불이 났다. 차종과 연식, 파워트레인, 유종 등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브랜드 중 BMW에서만 유일하게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았을 뿐, 다른 브랜드들은 자사 차량의 화재 사고에 대해 이렇다할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운전자와 그 가족들의 일상과 아주 밀접한 자동차에서 발생한 사고이니만큼 국민들의 불안감이 큰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정부의 성급한 대응에서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성급하게 내놓은 대응책에서 마저 국민 정서와 엇박자를 내고 있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자리에서 “운행정지 명령 등 사후 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하겠다’며 자동차 브랜드를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이미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BMW 리콜 대상 차량 중 긴급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차주들에게 강제운행중지 명령을 내렸다. 지자체에서는 대상 차주들에게 운행중지 명령서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내린 국토부의 이번 결정은 오히려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우는데 한 몫했다. 개인 재산권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정 차량에 대해 운행중지 명령을 강행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마치 해당 차종이 ‘달리는 시한폭탄’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당 차종 차주들은 긴급 안전진단을 받았다는 스티커를 차량에 붙이는 식으로 자신의 무죄(?)를 표시하거나, 차량 후미에 부착돼 있는 모델명과 엠블렘을 떼내는 방식으로 눈가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량을 구입한 차주들은 이번 화재 사건으로 인해 제대로 차량을 운행할 수도 없고 긴급 안전진단을 받기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서비스센터를 방문하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엄연한 ‘피해자’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주차장에서 그들은 여전히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불안감의 시작은 늘 그렇듯 ‘정보의 부재’에서 시작됐다. 정확한 정보만 제대로 알려졌더라면 억울한 피해자와 국민들의 불안감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방방재청 발표에 따르면 1년에 발생하는 차량 화재 사고는 약 5,000여 건에 달한다. 이중 80~90%는 ‘원인 미상’이다. 방화를 당했거나 천재지변에 의한 화재 등 원인을 미뤄 짐작만 할 뿐이다. 나머지 10~20% 정도만 화재 원인이 파악된 셈이다.
밝혀진 화재 원인은 다양하다. 수만 킬로미터를 운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정비를 받지 않은 정비불량 차량이나 전손 차량을 무리하게 부활시킨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차량 성능을 높이기 위한 불법 튜닝에 의한 사고, 후미 충돌로 연료탱크가 파손되어 불이 옮겨 붙은 경우, 전기 계통의 합선에 의한 화재 사고 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차량 결함에 의해 발생하는 화재 사고는 전체 건 수 중 1~2%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화재 사고들의 원인은 차량 결함 이외에도 다양하다.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개인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화재 사고가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중의 여론은 마치 모든 차량 화재 사고가 ‘차량의 결함’ 때문이라는 식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 하다. 정부는 강제 운행 중지와 같은 면피성 미봉책보다, 국민들의 근본적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확한 화재 원인을 하루 빨리 파악해주길 바란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멈출 수 있는 방법도, 해당 브랜드 차량 차주들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 방법도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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