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엽 교수]
안전불감증은 과연 우리나라만의 고질적이고 독특한 사회문화적 병폐일까? 안전(安全)이란, 말 그대로 ‘다치지 않은 편안한 상태’를 말한다.
편안하다는 말은 자연스럽다는 말과 유사한데, 자연은 본디 물리학적으로 무질서하기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설명되어지기도 한다. 즉, ‘질서 정연한 거리’는 본래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태풍이 휩쓸고 간 거리’의 풍경이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과의 투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집을 짓고,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하여 제방을 쌓는다.
즉, 집과 둑이 자연의 풍파에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보수를 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본래 땅위를 걷는 존재로 태어난 인류가 바다와 하늘을 헤치고 다니는 것 또한 자연에 거스르는 일이므로, 선박과 항공기 정비 등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일기예보 등으로 자연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불행을 방지할 수 있겠다.
영어의 safe는 ‘위험에서 구함’을 뜻하는 salvare라는 불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런 어원의 흔적은 구조라는 뜻의 salvage라는 영단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위험에서 구함 (salvage)’이 좀 더 능동적인 느낌이라면, 동양에서의 ‘안전’은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느낌이 있다.
‘안전’은 외부로부터 파괴적인 침습을 받지 않은 편안한 상태만으로 단어 상의 의미가 충족되겠지만, ‘위험에서 구함 (salvage)’은 위험에서 탈출 또는 위험요소를 제거해야 하는 더 적극적인 행동의 수반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낌이 다른 동서양의 두 단어를 놓고 보면, 능동적인 서구에 비하여 피동적인 우리의 개념으로 인해, 우리가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좀 더 어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salvage’라는 어원은 사실 ‘salvum'이라는 라틴어가 어원이다. 최근 이탈리아의 교량붕괴 사고를 보고 많은 국민들이 성수대교의 아픔을 떠올렸을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그 기질상 ’동양의 라틴인’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겠으나, 결국 안전 불감증을 단순히 동서양간의 사회문화적 차이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안전은 무질서한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적절한 대비로 쟁취할 수 있는 것으로, 본디 수고로운 일이다.
우리는 ‘편안’하게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얼른 깨달아야 한다. 한반도에 태풍이 오고 있다! 번거롭더라도 늦기 전에 내 주위의 안전을 둘러보며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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