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면에서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너의 결혼식’(감독 이석근)은 박보영의 지난 필모그래피와는 많은 면에서 궤를 달리한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장르인 ‘늑대소년’, ‘오 나의 귀신님’, ‘돌연변이’, ‘힘쎈여자 도봉순’ 등과는 장르, 캐릭터적으로도 달랐던 것이다.
‘3초의 운명’을 믿는 승희와 그녀만을 운명이라 여기는 우연의 첫사랑 연대기를 그린 ‘너의 결혼식’은 박보영의 지난 필모그래피와는 달리 너무도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과 관계를 묘사, 모두가 공감할 만한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럼에도 박보영은 자칫 남성들의 ‘첫사랑 판타지’에 그칠 수 있는 승희를 비틀어 또 한 번 인물을 폭넓고 깊이 있게 묘사하는 것에 성공한다.
“제가 ‘너의 결혼식’을 하게 된 건, 승희가 쉽게 휩쓸리지 않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에요. 그 부분이 정말 좋더락요. 실제 제 모습은 우유부단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더 승희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 ‘너의 결혼식’은 지극히 남성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우연의 짝사랑 연대기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 우연의 심리 묘사 및 시선에 비해 승희의 묘사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더 잘 표현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우연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다 보니 승희의 사연이 친절하게 다 설명되지 않는 건 사실이에요. 오롯이 승희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분명 아쉬운 점은 많죠.”
시선과 입장의 차이. 아주 작고 미묘하고 미세했지만,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변화는 당사자인 승희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석근 감독도, 김영광도 모르고 지나쳤던 승희의 감정들을 박보영은 예민하게 찾아냈고 여성 관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승희가 자칫하면 여지를 주는 여자, 어장관리를 하는 여자라고 비쳐질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승희를 연기하고 싶었고, 제가 한다면 고쳐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감독님이 아무래도 남자분이라서 미묘한 건 잘 모르고 넘어가시더라고요. 제가 ‘감독님! 여자들이 느끼기엔 이런 대사가 여지를 주는 것처럼 보여요!’라고 따져서 많은 부분을 수정했어요. 제가 감정 이입을 해야 하는데, 저마저도 승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겠어요? 다행히 감독님이 의견을 많이 받아주셨고 그런 부분들이 지켜진 것 같아요.”
박보영의 말처럼 승희의 절친한 친구가 우연에게 호감을 보이고, 이를 전달하는 과정 등은 여성관객과 남성관개그이 시선, 입장이 판이하게 갈렸던 부분. 박보영은 “여성관객의 입장에서 불편하고 또 떠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 감독님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감독님께 툭 까놓고 물었어요. ‘이 장면은 승희가 우연이를 떠보는 건가요?’ 그랬더니 아니라는 거예요. 정말로 승희는 우연이를 친구라고 여기고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대요. 너무 놀라서 감독님께 ‘그럼 절대 이렇게 대사를 치면 안 돼요!’라고 했었어요. 이거 말고도 산토리니에서 키스하려던 장면이나, 또 한 번 고백을 하는 장면, 우연과 헤어지는 장면 등 남자들은 모르는 그런 작은 부분들을 여성의 입장에서 조금 더 납득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었죠. 여자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승희에게 공감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이러한 ‘입장차이’는 인터뷰를 하는 박보영과 취재진 사이에서도 벌어졌다. 몇몇 장면들을 언급하면서 너무도 다른 ‘이해’를 보여온 것. 박보영은 이러한 부분이 “걱정스럽다”고 하면서도, “그래서 더 궁금하다”고 말했다.
“반응이 크게 갈릴 것 같아요. 개봉하고 나서 관객들 반응이 너무 궁금해요. 이제까지는 개봉하고 나면 제 손을 떠났다는 느낌이었고, 어떻게 느끼는지는 관객의 몫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조금 달라요. ‘재밌게 봐주실까?’도 궁금하지만, ‘승희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해해줄까?’가 더 궁금해요.”
늑대 소년과의 사랑을 다룬 영화 ‘늑대소년’, 귀신에 빙의해 짝사랑을 펼치는 ‘오 나의 귀신님’, 슈퍼 히어로급 괴력을 자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힘쎈여자 도봉순’ 등, 박보영은 그간 판타지가 가미된 작품들을 연기해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린 ‘너의 결혼식’은 박보영의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너의 결혼식’은 정말 쉽고 재밌게 찍었어요. 이전에는 판타지 소재가 섞이다 보니 표현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현실적인 대사가 많았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고궁에서 우연과 싸우는 장면은 너무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연기가 아니라 정말 폭발할 것 같았어요.”
영화의 결말부 역시 너무도 현실적이다. 기존 로맨스 영화들이 남녀주인공이 하나가 되는 방식이었다면 영화는 지난 사랑을 추억, 서로를 보내주며 진정한 성장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에 두 사람의 행복한 결말을 꿈꾸던 팬들은 다소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저는 현실적이라 너무 좋았어요. 그래도 영화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은 해피엔딩을 기대하셨겠죠? 찜찜하다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저는 현실적인 게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는 승희와 우연의 사랑 그리고 성장을 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또한 큰 영향력을 발산, 두 사람의 성장과 변화에도 큰 기여를 한 바. 박보영에게 “우연과 승희의 주변인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분들이 계셔서 영화가 더 밝고, 현실적이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특히 (강)기영 오빠는…. 하하하. ‘오 나의 귀신님’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터라,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 정말 재밌었어요. 또 (김)영광 오빠랑 기영 오빠가 둘이 너무 잘 맞아서 영화도 더 재밌어진 것 같더라고요. 저는 특히 롤케이크 신이 웃겼어요. 시나리오에서는 ‘비호감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까 정말 웃기더라고요.”
지난 2014년 영화 ‘피끓는 청춘’에서 여자 일진과 공고 싸움짱으로 호흡을 맞췄던 박보영과 김영광. 그는 두 번째 만남이기에 더욱 친숙하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연기하면서 (김영광) 오빠처럼 우연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잘못하면 집착으로 보일 사랑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잘 표현해낸 것 같아요. 특히 오빠의 웃음이! 하하하. ‘내가 더 돋보여야지’ 하는 마음보다 ‘우연이가 잘 살아야 영화도 잘 산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영화에서 빛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걸 깨닫고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이 작품은 영광 오빠를 빛나게 만들어야 하는 작품이었고 그 덕에 다 같이 빛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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