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탄핵되면 시장이 붕괴하고 모두가 매우 가난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나는 규제를 철폐했다. 감세는 굉장한 것이었다"며 자신의 친성장 정책을 옹호했다. 자신이 증시 랠리를 주도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설이 다시 불거졌다. 그의 핵심 측근으로 '해결사' 역할을 해온 마이클 코언 변호사가 미국 사법당국에 유죄를 인정하면서 감형을 대가로 증언하는 플리바게닝 과정에서 폭탄발언을 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추문 피해여성 2명의 입을 막기 위해 돈을 지불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는 선거자금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게 코언의 주장이다.
미국 뉴욕증시는 아직 코언의 발언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한 이후 더 강력해진 성장세와 기업실적에 힘입어 미국 증시는 전날 역대 최장기 강세장 기록을 경신했다.
트럼프의 말대로 규제완화·감세 정책은 최근 미국 증시의 랠리를 이어준 원동력으로 꼽힌다. 미국 경제는 지난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4.1%(연율 기준) 성장했다. 약 4년 만에 최고치다. 실업률은 지난달 3.9%, 5월에는 3.8%로 1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을 어떻게 탄핵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블룸버그는 투자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이날 발언이 과장됐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증시 랠리를 트럼프만의 공으로 돌릴 수 없다고 지적한다.
월가의 유력 애널리스트인 샘 스토벌 CFRA 수석 투자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되면 증시가 5~10%, 심지어 2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사태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거나 증시가 약세장으로 돌아서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온 친성장 정책이 증시를 떠받친 건 사실이지만, 정책의 지속성은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의회에 달려 있다는 게 스토벌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회가 이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잔류 여부는 큰 변수가 안 된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되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바통을 이을텐데,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만큼이나 친시장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가 트럼프의 반무역 정책마저 지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월가의 우려를 사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뀔 게 별로 없다는 말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에 직면하면 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탄핵절차 자체가 불확실성을 키워 투자심리를 냉각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켓워치는 이에 대해 그레그 발리에르 호라이즌인베스트먼트 수석 글로벌 투자전략가의 최신 투자노트를 인용해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기업실적에 집중하는 투자자들은 분별력이 있다며, 탄핵공포가 투매를 촉발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올리버 존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탄핵위기도 증시에 별다른 영향을 못 미쳤다고 지적했다. 닉슨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 표결에 앞서 사임했고,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덮으려다 탄핵위기에 몰렸다가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돼 간신히 백악관을 지켰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시장이 탄핵 때문에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는 오히려 트럼프의 백악관 퇴출에 따른 '안도 랠리'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퇴출되면 그의 갑작스러운 트윗(트위터 게시글)과 그가 연루된 각종 스캔들에 대한 조사, 무역전쟁 같은 악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는 설명이다.
코언의 폭로로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다고 본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 프리딕트잇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중에 탄핵될 가능성은 이날 현재 45%로 지난주에 비해 5%포인트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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