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이 지난 7월 베트남에서 비밀리에 실무자급 회담을 진행한 가운데 미국 정부가 사전 정보 공유를 하지 않은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對)일 통상 관계에 대해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미·일 관계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 日 "북한 납치 문제 독자적 해결"...미국 '불편'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일본과 북한 당국이 극비리에 회담을 진행,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본 측에서는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의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 정보관이, 북한에서는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 책략실장이 이번 회담에 각각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이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은 2012년 제2기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래 최대 숙원사업이다. 2013년에는 아예 '납치 문제 대책 본부'를 신설했을 정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는 없다는 방침을 강조해왔다.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여러 차례 촉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측이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이지 않자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들의 송환 문제를 협상하는 데 있어서 트럼프 행정부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일 회담 소식과 관련 미국 정부 측은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대북 협상과 관련해 진전 상황을 계속 공유해왔는데도 일본은 그런 과정 없이 독자적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전했다.
앞서 북한 당국은 최근 북한을 방문했다가 남포에서 구속된 일본인 스기모토 도모유키(杉本倫孝) 씨를 전격 석방했다. 이에 따라 북일 대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받았다. 중국 기반의 여행사에서 패키지 상품을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가 남포에서 구속된 스기모토 씨는 28일 중국 베이징을 통해 일본땅을 밟았다.
◆ 트럼프 "진주만 잊지 않았다"...대일 통상 압박 가능성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기존 강경 노선에서 대화 노선으로 바뀌자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회담 등을 통해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을 취할 때까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지나 한국 전쟁 '종전 선언' 등의 요구를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의 통상 관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의 발단이 된 진주만 공격을 언급하면서 '나는 진주만을 기억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지난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군 태평양 함대를 선전포고 없이 기습 공격했다. 당시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인 2400여 명이 사망했다.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일본 경제 정책과 미국의 무역적자에 대해 불만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미·일 무역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미국산 쇠고기와 자동차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 동맹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철강 관세 유예 대상국에서 빠진 상태에서 추가 통상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WP는 "미국과 일본 정부는 양국 사이가 여전히 강력한 동맹 관계라고 말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 변화, 일본 무역 정책에 대한 불만 등이 일본의 불만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8번의 정상회담, 26번의 전화회담을 추진하는 등 미·일 관계에 공을 들였지만 최근 관계가 표류하면서 아베 총리의 실망감이 커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미국에 알리지 않고 지난 7월 북한과의 회담을 진행한 것도 경제·안보 문제에 있어 일본의 인내심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WP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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