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기독교 문명과 사상을 전한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1859-1916)는 1885년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인천에 도착하였다. 원래 인도 선교사를 자원하여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한국에 선교사가 절실하다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요청으로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언더우드 목사와 그의 가족 4대에 걸친 한국에 대한 헌신과 봉사는 이 땅에 믿음과 기독교 정신을 심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강국 대한민국을 일구어냈다.
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이곳 조선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중략)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저들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禍)를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신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자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이곳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아멘.”
그렇다. 언더우드 목사의 기도는 이루어져 척박한 조선에서 100년 후 오늘은 예배당과 학교가 넘쳐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견하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러나 , 반도의 북녘 땅은 아직도 고통 속에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고 사는 동포 2500만이 살고 있다.
보통 하나의 종교가 민중 속에 뿌리내려 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기까지는 500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의 불교가 그리하였고 유교 또한 500년이 걸렸다. 헌데 100년도 채 안 되어 한국의 기독교는 그 신자 수에 있어서 인구의 3분의1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개척정신이 한국 국민이 바라는 독립애국정신과 결합하여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왔다 하겠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가운데 한 사람이며 ‘자유와 계몽사상의 사도(使徒)’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버지니아 하원의원으로서 대륙회의에 33세의 나이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를 기초(起草)하였으며, 열렬한 자유 옹호자로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애국충정의 마음을 독립선언문에 담았다.
독립선언서의 철학적 부분은 조지 메이슨의 당시 혁명사상을 요약한 ‘인권선언’을 이용했으되,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바탕이 된 사상은 급진적인 애국자들이 물들어 있던 존 로크의 사상이다. 존 로크의 사상은 정부가 인민의 동의를 기반으로 해야 하며 생명권, 자유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이라는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여기서 그는 '정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제퍼슨이 독립선언서에서 존 로크의 자유주의 사상을 극명하게 표현한 까닭은 혁명권에 있다. 그는 당시 영국 군주제에 저항하는 것이 신에 대한 복종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신의 이름을 빌려 미국 독립혁명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후, 1800년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새 수도 워싱턴에서 취임식을 거행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1803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서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매입하여 당시까지의 미국영토에서 두 배의 땅을 확보하였다. 또한 자신의 비서 루이스 대위와 클라크 중위를 파견하여 서쪽 끝으로 탐험케 하여 당시까지의 영토인 아메리카 대륙 동부에 머물지 않고 최초로 태평양에까지 다다랐다.
컬럼비아 강의 초입 오리건주의 아스토리아는 ‘루이스 앤드 클라크 원정대’를 시작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서막을 알리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오리건트레일로 불려진 개척민의 서부 이동은 최초 50만명이 출발하여 인디언 습격과 질병, 영양실조 ,동사(凍死)한 사람을 포함하여 도착 시 7만명이 겨우 생존한 피나는 여정이었다 한다.
직선 거리상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인 아스토리아는 빼어난 경관과 발전 가능성으로 다음세대가 주목할 태평양시대의 아메리카 대륙의 교두보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존심을 회복하였는가.
기독교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따른 우리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성장을 이루었다.
허나 엊그제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여준 것같이 뼈아픈 민족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동아시아센터 회장 윤 창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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