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개석 총통을 만난 윤의사의 동생 윤남의(맨 왼쪽)와 아들 윤종(1966.10.10).]
마침내 유해봉환이 성사되자, 윤남의는 형님의 정신이 깃든 월진회 재건에 적극 나섰다. 1947년 12월 21일, 58명의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힘을 모아 월진회가 부활됐다.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춰보면 월진회의 재건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조국이 해방은 되었으나, 외세(外勢)로 인해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의 친동생 윤남의에게 전달한 휘호. ]
매헌이즘, 신민운동의 총 본산 월진회
재향시절 매헌 윤봉길 의사는 ‘구국(救國)운동에 있어, 정신개조와 실력배양의 기본 방략(方略)은 도덕성 회복과 경제자립, 교육문화의 보급’에 있음을 주창하고, 월진회를 통해 농민운동을 적극 전개했다. 그런데 해방된 조국은 외세의 개입으로, ‘친탁․반탁’으로 갈라져 어수선하고 앞날의 향방(向方)을 가늠키 어려웠다. 바로 그 시점, 윤남의는 조국의 앞날을 위해 월진회의 정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看破)했던 것이다.
김구 선생은 덕산 향리에서 반탁모임을 결성하고, 형님이 꿈꿨던 ‘완전자주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진력하는 윤남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이에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1948. 3. 1. 발간본)에 ‘윤남의 동지 기념’이라고 서명해 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김구 선생은 1948년 10월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 즉, ‘국가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보통사람(국민)들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의 휘호를 윤남의에게 써줌으로써, 월진회 활성화가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함을 피력(披瀝)하며 힘을 실어 주었다.

[김구 선생이 윤 의사 동생 윤남의에 전달한 백범일지. 이 책은 1947년 12월 15일 발행되었다. 이책의 뒷면에 파천황(윤 의사가 일제에 파천황적 천벌을 내렸다는 의미)이라고 씌여있다.]
‘월진회 재건 취지문’에는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매헌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고, 당시 암울한 시대 상황과 이에 대한 타개책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귀한 사료(史料)다. 해방된 지 7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 자주통일의 길은 난망(難望)하고, 안보와 경제마저 위증(危症)한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월진회 재건 취지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우리에게는 상해의거의 근간이 된 월진회를 민족의 보배로 발전시켜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이에 본지에 ‘월진회 재건 취지문’과 ‘월진회원 실천강령’ 전문을 공개한다.
월진회 재건 취지문
월진회 재출발에 제(際)하야
우리들이 회고하야 볼 적에 서기 1945년 8월 15일 역사적인 해방의 이날. 우리 삼천만동포의 환희작약(歡喜雀躍)은 형언할 수 없는 열광적이었으며, 우리들의 새로 세우려는 이상의 국가는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 이상과는 엉뚱하게 우금(于今)것 완전자주통일독립은 어데 가고 불행히도 조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불의(不意)의 삼팔선은 국경 아닌 국경을 만들어 우리 삼천리강토의 대동맥인 교통까지도 막힌 지 오래여 조상전래(祖上傳來) 천세만대(千世萬代)의 꽃다운 낙원, 이 강산은 다시 암울한 비운(悲運)에 휩싸여 사상적 마찰과 민족적 분열만 격화되어 정치적 혼란과 경제의 파멸로 민생은 점점 도탄에 빠질 따름이니 아~ 이것이 누구의 죄일까?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현금(現今) 우리는 미소(美蘇)의 두 손님을 우리 집에 드리우고 있다. 이네들은 주인을 무시하고 우리 살림살이를 간섭하려 할뿐더러, 의지가 서로 맞지 않고 증오와 질투만이 심해가고 있어, 자칫하면 격투가 벌어져서 우리의 살림살이를 모두 때려 부술 우려가 많다.
우리는 이 두 손의 비위를 다 맞출 수는 전연(全然) 없는 형편이고 하루 바삐 이 두 손을 자기네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집에 두 손님이 머무르고 있는 이상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모든 일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손님에게 의뢰를 하지 말자. 우리는 삼팔장벽의 해제로 남북통일정부를 세워 삼팔 이남의 농업지대와 삼팔 이북의 광공업지대의 결합으로써 경제적 발전을 기(期)치 않고는 여하한 원조도 효과는 없다.
아~ 동포들이여! 반성합시다. 각성합시다. 단결합시다!
미국이 취하고 있는 국책(國策), 소련이 취하고 있는 국책 그리고 우리의 국수(國讐) 일본이 다시 노리고 있는 야욕은 각각 크게 다름이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가 취할 길도 당연히 다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소련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자기네 주의로서 세계를 제패하려 함이 그네의 욕망이고, 미국은 또 공산주의를 정복하려 함이 그네들의 욕망이며 간악한 일본 놈은 그 어떤 세력을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내란을 조장시키는 반면에 미소전(美蘇戰)을 야기 시켜서 또다시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것이 놈들의 야망인 것이다. 이러한 정국 하에서 우리의 취할 길은 외국 군대를 철퇴시키어 주권을 회복하야, 남북통일 자주정부 수립이 절대의 정의며 우리의 반듯한 진로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로서 스스로 우리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즉 삼천만 동포는 총궐기 총무장해야 한다. 그러면 그 어떠한 무장이냐, 그야 물론 물질적 무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일층 중요한 것은 열렬한 애국심에서 우러나는 정신적 무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지우금((至于今) 이러한 형편에 놓여 있음은 애국정신이 함양되지 못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조국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면 우리민족의 애국정신을 함양함이 급선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우리는 남의 나라를 의심할 필요도 없고 신뢰할 필요도 없으며 오직 우리의 씩씩한 애국심과 꿋꿋한 단결력만으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고찰해 볼 때, 신라가 당나라의 원군을 빌려서 도움을 입었지만 결국 신라의 조야(朝野)를 통(通)하야, 고상한 애국심과 단결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당나라의 속국을 면치 못했을 것이며, 이조 중엽에 왜구를 막기 위하여 명나라의 원군을 받아 도움을 입었으나 우리 조야의 충의심과 단결력이 없었다면 명장(明將)들의 야심을 막아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타국군이 당초에는 우리나라를 도와만 주고 침략할 마음이 없이 입경을 하였다 할지라도 우리의 애국심과 단결력이 없다면 종말(終末)에는 우리를 침략하고야 말 것이고 이와 반대로 타국군이 당초에 우리를 침략할 목적으로 입경하였다 할지라도 우리 국민의 애국심과 단결력이 충실하다면 이를 능히 방어할 수 있으며, 저들은 할 수 없이 물러가고야 말 것이다.
우리들은 이 역사적 초비상시국을 당하여, 현실의 사리사욕을 벗어나 오직 애국적 정신으로 일치단결하여 완전자주독립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서야 우리의 민권과 민족의 자유도 있을 것이며 만민공생(萬民共生)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애국선민(愛國先民)들의 간절한 부탁일 것이며 순국선열들의 열렬한 부르짖음일 것이다. 우리가 윤봉길 선생이 이 세상에 남긴 월진회를 적극 추진하여 국가의 원동력이 되는 농촌의 실력을 배양하고자 함도 선생의 불타는 애국적 정신을 동포에게 주지시키어 보급하고자 함도 우리 동포의 애국정신을 앙양(昻揚)하고 발휘시켜서 국가부흥과 민족발전의 일조가 될 것을 굳게 믿는 까닭이다.
단기 4280년 12월 21일 윤남의
연재를 마치며
‘영원한 청년 의사 윤봉길’이란 제목으로 본지에 20회에 걸쳐 글을 올리며, 필자는 매회 뿌듯함과 아쉬움으로 잠을 설쳤다. 25세 짧은 생을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살다간 백부를 조명하며, ‘어찌 이를 감히 글로 옮길 수가 있을까? 어찌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등등’ 백부에 대한 외경(畏敬) 때문이었다.
필자는 지난 50여 년간 윤봉길의사 선양사업을 해오면서, 백부의 숨결을 따라 국내외 모든 유적지를 답사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우리조국 북녘 땅에서 백부와 상봉할 수가없었다. 연재를 마치면서도 내내 이 부분이 못내 아쉬웠다.
윤봉길 의사는 망명 도중 평안북도 선천에서 일경에 체포돼 구금되었다 풀려난 후, 선천시내 정주여관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여기서 이흑룡과 재회했고, 김태식․선우옥․한일진 등 지사를 만나 조국독립의 의지와 혈기를 불태운 곳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백부의 숨결이 남아 있는 선천을 답사, 그 일대기를 역사적 현장기록을 통해 화룡점정(畵龍點睛)하고 싶다.
한편, 1960년대 후반 김일성 주석은 ‘윤 의사 유족을 평양으로 초청해 만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우리 정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준다면 성사되리라고 본다.
끝으로 이 기록은 선친 윤남의와 독립운동가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작성했다. 아울러 선행 연구된 책과 자료들도 참고, 인용함에 있어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한다. 한편, 그동안 잘못 알려진 것들도 바로잡았음을 밝힌다. 매헌 윤봉길 의사께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치며 글을 맺는다.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사진=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
■ 월진회원 실천요강
1. 우리들은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말고 소이(小異)를 떠나 대동단결하여 우리 민족의 최고 이상인 완전자주건국을 위하여 분투노력할 때임을 간폐에 명각하자.
2. 우리들은 상조상애로 사회생활이념을 삼고 공동협력으로 자주건국정신을 삼자.
3. 우리들은 국가부흥과 민족발전에 일체의 장해적(障害的) 행동을 범치 말자.
4. 우리들은 매사에 공명정대하며 책무에 충실한 인간이 되자.
5. 우리들은 공중도덕을 준수하여 신의와 명예를 존숭하여 개인과 민족의 위신을 엄수하자.
6. 우리들은 개인과 국가와 사회와 민족과의 연대적 상관성을 깊이 의식하자.
7. 우리들은 근검절약을 여행(勵行)하여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공히 양풍미속을 함양하자.
8. 우리들은 급속히 산업의 부흥과 증산에 매진하여서 민생문제를 해결하자.
9. 우리들은 편협한 독선주의를 타파하고 관용화협공명정대한 정치도(政治道)를 수득(修得)하자.
10. 우리들은 의식주와 일상생활면을 통하여 가장 경제적이며 과학적이며 애국적인 신건국생활운동을 전개하자.
단기 4280년 12월 21일

[월진회 재건 취지문 실천요강]
■ 월진회원 실천요강
1. 우리들은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말고 소이(小異)를 떠나 대동단결하여 우리 민족의 최고 이상인 완전자주건국을 위하여 분투노력할 때임을 간폐에 명각하자.
2. 우리들은 상조상애로 사회생활이념을 삼고 공동협력으로 자주건국정신을 삼자.
4. 우리들은 매사에 공명정대하며 책무에 충실한 인간이 되자.
5. 우리들은 공중도덕을 준수하여 신의와 명예를 존숭하여 개인과 민족의 위신을 엄수하자.
6. 우리들은 개인과 국가와 사회와 민족과의 연대적 상관성을 깊이 의식하자.
7. 우리들은 근검절약을 여행(勵行)하여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공히 양풍미속을 함양하자.
8. 우리들은 급속히 산업의 부흥과 증산에 매진하여서 민생문제를 해결하자.
9. 우리들은 편협한 독선주의를 타파하고 관용화협공명정대한 정치도(政治道)를 수득(修得)하자.
10. 우리들은 의식주와 일상생활면을 통하여 가장 경제적이며 과학적이며 애국적인 신건국생활운동을 전개하자.
단기 4280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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