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대표로 한 대북특사단이 북측에 들고 가는 우리 정부의 핵심 중재안은 종전선언과 맞교환할 비핵화 액션플랜을 북한이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시간표를 내놓고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할 경우, 남·북·미 연내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을 설득하겠다는 게 우리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이에 대한 중재안에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사단 방북에 앞서 4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이 같은 중재안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사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협상의지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이 미국의 핵 리스트 제출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최상의 안이지만,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조치라 할 수 있는 비핵화 일정 제시 등도 협상 카드로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특사단은 9월 중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을 재추진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한 북·미 간 협상재개 방안도 제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 위원장의 결단이 중요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선(先) 종전선언-후(後) 비핵화'라는 기존의 태도를 바꿔, 핵신고 등 비핵화 조치의 성실한 이행을 약속한다면 종전선언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달 중순 3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재차 확인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구체화한 비핵화 로드맵 및 종전선언 계획을 놓고 논의를 진전시킬 확률이 높다.
문 대통령은 이달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입장을 전달하고 북·미간 견해차를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4·27 판문점선언 당시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정상 간 연내 종전선언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청와대는 10월 중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간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마무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반대로 북한이 '종전선언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할 경우, 비핵화 협상에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이 큰 원칙에 합의하고도, 구체적 방법론을 놓고 지금까지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특사를 파견해도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붙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미국 정치권 내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미국의소리(VOA)가 외교, 국방 관련 상임위 주요 의원을 상대로 의견을 조사한 결과,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서는 빈틈없는 최대한의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일부 의원들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동결되고 이에 대한 사찰이 이뤄지면 제재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다른 의원들은 북한의 핵탄두 폐기에 대한 검증까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나온 뒤에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과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한 김 위원장,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한반도 운명의 키를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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