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와 동아일보가 동시에 공격
이채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8년 9월7일자 한겨레와 동아일보 사설이 거의 같은 위치에 같은 이슈의 기사를 같은 톤으로 썼네요.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의 발언에 관한 지적입니다.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이 이렇게 입을 맞춰, 문정부의 핵심 정책당국자를 비판한 것은 보기 드물죠. 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요.
"모든 국민들이 강남가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야될 이유도 없고 거기에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고...('물론 살고싶은 사람도 있습니다'라는 김어준의 발언에) 물론입니다. 저도 거기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은, 지난 5일 김어준이 진행하는 TBS뉴스공장에 나와서 한 발언이었죠. 3일 JTBC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이 16%나 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라고 말해 언론에 회자된지 이틀만에 또 구설수를 낳은 셈입니다. 동아일보는 장하성의 '가벼운 혀'를 꾸짖고 나섰고, 중앙일보는 "문통 지지율을 깎아먹는 일등공신"이라는 야당 발언을 소개하며 공격했죠.
나름으로 농담같이 던진 '뒷말'이, 여론의 뭇매로 돌아오는 상황이 됐는데...사실 이런 공분(公憤)을 사는 일들은,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빈자를 챙겨 나라를 키우겠다는 소득 주도 성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부가 냉혹한 현실논리에 부딪쳐 주춤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견지해야 하는 것은 '선한 의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것마저 의심받는다면, 정책도 정권도 설 자리가 너무 비좁아질 수 밖에 없죠.
# 20억대 강남 아파트 주민인 장실장은 강남 농담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작년 재산 신고액이 100억에 가까웠고, 20억대 강남 아파트에 사는 '대통령정책실장'은, 강남과 관련해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입장도 경우도 아닌 걸 까먹었던 거죠. 가벼운 입놀림이란 얘긴 거기서 나오는 것이고, 네티즌의 허탈과 심기불편 또한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의 문제의식은, 장하성의 저런 '유머'가 결국, 정책 당국자들의 결정에 사익(私益)추구가 곁들여진다는 의심을 더욱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죠. 이게 무서운 얘깁니다.
장실장은 싱가폴의 예를 들면서 중산층 서민의 주택은, 30년 임대주택을 정부가 공급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강남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서민이 사는 집의 가격은 정부가 철저히 관리하는 게 맞다고 전제하면서, '강남'은 서민들이 사는 곳이 아니니 정부가 굳이 그 시장을 관리하고 집값을 제어하려고 나서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거죠.
# 논지는 오히려 시의적절한 것이었으나, 농담이 망친 셈
거기까지는 논리상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뒤에 우스개처럼 슬쩍 걸친 말이 자기 자신의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이 강남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순간, 자신은 서민이 아니니 스스로가 강조하는 서민정책이 유체이탈한 '남의 정책'임을 드러낸 것이 됐고, 또한 강남의 집값을 굳이 정부가 건드릴 필요 없다는 주장 또한 사익과 결부되는 것으로 비치고 만 겁니다.
그러나, 그가 강남에 사는 것 자체가 허물일 수는 없고 강남부자라고 서민정책 입안자가 되어선 안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여기엔 문재인정부와 이 정부의 정책리더들의 '본질적 선의'와 '투철한 실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생명줄일 것입니다.
# 정부의 선의에 대한 신뢰감의 문제
한겨레까지 걱정하고 나선 까닭은, 저 발언들 속에서 드러난 '민낯'이 이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겠죠. 국민들이 강남 실장이 배 아파서 그렇겠습니까. 모두가 강남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 말이 강남주민인 정부 당국자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된다는 거죠.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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