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명민(47)은 명확하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 캐릭터, 연기에 관해 누구보다 냉정하게 평가하고 판단한다. 연기는 물론이고 영화의 완성도, 외적 구성, 마케팅, 홍보 일정까지 세세하게 꿰고 있는 그는 이상적인 ‘주연 배우’다.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에서도 ‘주연 배우’로서 가져야 할 덕목은 이어졌다. 사극과 크리처 장르(주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등장하는 장르영화)를 엮어 새로운 시도에 나섰으나 제작 전부터 갖은 난항에 부딪힌 ‘물괴’는 김명민의 가세로 무게 중심을 잡고, 관객들의 신뢰도 회복했다.
“영화는 다 제 역할이 있고 메시지가 있어요. ‘물괴’는 오락영화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축하고 캐릭터의 성격으로 웃음을 유발해요. 거기에 한국형 크리처의 등장으로 볼거리까지 더해 추석 영화로 손색없어요. 이 결과물은 다양한 의견의 절충안이라고 봐요.”
영화의 장단점을 명확히 짚고 관객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려는 김명민. 그에게 ‘물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묻고 또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만족스러워요. 다만 제 연기에 관해 아쉬움이 남는 거죠. 촬영 당시에는 물괴 디자인이 완성되지 않아서 적당히 추측하며 (감정 연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물괴 디자인이) 더 공포스럽고 혐오스럽게 나왔더라고요. 공포 이상의 혐오감을 담아서 연기했어야 했는데. 표현에 있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게다가 물괴가 연기를 어찌나 잘하던지. 하하하. 오히려 제가 꾸며서 연기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액션을 잘했으니 퉁 치자고요.”
영화 ‘물괴’는 허종호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에게도 도전이었다. 국내 최초 사극 액션 크리처 무비인데다가 철저히 CG인 ‘물괴’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을 터.
“‘물괴’는 제게 도전이었어요. 도전하지 않고 사는 삶은 재미없잖아요. 하지만 개인의 것을 채우기 위해 도전하는 건 위험해요. 희생자가 따르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물괴’의 경우, 이 도전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온 분들이 계셨던 거죠. 이미 제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프리 프로덕션이 진행 중이었어요. 이분들과 같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적 도전이 아닌 힘을 모으는 작업이었으니까요.”
평소 크리처 장르를 즐긴다는 김명민은 “영화 ‘괴물’ 이후 거의 전멸한 크리처 장르”를 완성도 있게 만들어냈다는 점에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진 듯했다.
“한국에서 크리처 장르가 나온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예요. 이런 분들이 앞서 노력 중이라는 게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거예요. 돈을 더 벌고 그런 게 아니라 위험부담이 크다는 걸 알아도 가는 게 개인적 욕심을 차리고자 하는 작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영화 외적인 고민을 제쳐두고 순수한 배우로서의 고민은 없었을까? 김명민에게 연기적인 고민은 없었는지 물었다.
“‘물괴’가 어떻게 완성도 있게 나오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끼리 ‘만약 물괴 디자인이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만들어주자’고 말했어요. 드라마를 탄탄하게 만들어가자고 다짐한 거죠. 물괴와 연기할 때 주고받는 호흡이 한 팀처럼 보이기를 바랐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했어요. 솔직히 쉽지만은 않았어요. 각각의 개성도 표현하되 한 팀으로서의 일체감도 드러내야 하잖아요. 각각 따로 놀면 관객들이 물괴를 우습게 보거든요. 집중력이 떨어져요. 이런 개성을 살리면서 모두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는 연기톤을 잡아가는 게 제 몫이었죠.”
실체 없는 물괴와 싸우는 것은 “민망한 경험”이었다고. 그는 “촬영 전에는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더니 막상 촬영에 돌입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죠. 하하하. 민망하다가 촬영을 시작하면 또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만 (촬영분) 모니터를 못 해요. 제가 연기한 걸 사람들이랑 보는 게 민망하더라고요. 감독님이 OK라고 하면 그냥 믿고 따라가요. 굳이 확인하려고 하지 않고요.”
앞서 “나보다 물괴가 연기를 더 잘했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려왔다. 엄청난 성장과 발전을 거둔 VFX(시각효과)·CG(Computer Graphics)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CG 캐릭터가 늘어난다면 배우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맞아요. 우리도 ‘이제 배우들이 밀리는 거 아냐?’ 하는 이야기를 했어요. CG 캐릭터는 감독 말도 잘 듣잖아. 이러쿵저러쿵 말도 하지 않고. 하하하. 하지만 배우의 입지가 좁아질 것 같지는 않아요. 인간이 가지는 휴머니즘은 오로지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또 CG를 이용한 장면들이 늘어날수록 인간 고유의 감성, 드라마가 더 소중하게 쓰일 거예요. 관객들 또한 더 순수한 휴머니즘을 찾을 테고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