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푸어(poor)'다. 푸어는 '가난한',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로, 부동산·금융 등 경제분야를 비롯해 생활·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느라 빚에 허덕이는 '렌트푸어(Rent Poor)', 열심히 일해도 빈곤층을 벗어나기 힘든 '워킹푸어(working poor)',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빈곤한 삶을 사는 사회 초년생은 '스튜던트푸어(student poor)', 전 재산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받아서 겨우 집 한 칸 마련한 '하우스푸어(house poor)', 자녀의 풍요로운 미래만 바라보고 사교육비를 대느라 소비 여력이 없는 가구 '에듀푸어(education poor)' 등 '푸어'가 붙는 단어로 넘쳐난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푸어족'이 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무리한 재테크나 자신을 뽐내고 싶은 허세로 스스로를 푸어족으로 만드는 이들도 많다. 무리하게 비싼 차를 샀다가 타격을 입는 '카푸어(car poor)', 대박을 꿈꾸며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가난해진 '스톡푸어(Stock poor)', 허례허식에 빠져 겉만 번지르르한 결혼 비용으로 힘든 신혼을 시작하는 '웨딩푸어(wedding poor)'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자신만의 시간이 없는 이들에게도 '타임푸어(time poor)'라는 용어가 붙으니 푸어가 꼭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단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는 셈이다.
한 취업 사이트에서 직장인 11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자신을 푸어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이 '앞으로 푸어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비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문제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남들처럼 살기 위해, 자신의 미래가 밝지 않으니 현재만이라도 즐기기 위해 푸어족의 길을 걷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 부의 크기가 능력으로 치부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삶다운 삶을 위해 가난을 선택한 그들을 누가 손가락질하겠는가? 물론 가난한 삶이 싫어 가난을 숨기고 벗고 싶어 발버둥치는 이들에게 '푸어'라는 단어까지 붙이는 것에 대해 자제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