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모든 신문들의 눈이 벌써 평양으로 가 있는 듯 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비핵화입니다. 모든 신문들이 첫면 제목에 '비핵화'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비핵화 접점 찾기 위해 허심탄회한 대화"(경향신문)
문-김 비핵화 평양담판...빅딜 촉각(매일경제)
평양의 사흘···핵심은 핵이다/비핵화,남북정상회담 의제 첫 등장(조선일보)
비핵화 '빈칸' 두고...남북 정상 평양 담판 (동아일보)
"김정은과 흉금 터놓고 비핵화대화 나누겠다"(중앙일보)
오늘은 좀 단순한 질문으로 '편집의 눈'을 진행해볼까 합니다. 신문들이 저마다 말하는 '비핵화'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게 우리말 맞나요? 이 말의 유래와 출처는 알기 어렵습니다. 한자어로 되어 있는 '비핵화'란 표현은 정작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말입니다.
중국에선 거핵화(去核化)라는 말을 씁니다. 핵설시거공능화(核設施去功能化, 핵시설 기능 제거)의 약칭으로 북핵관련 6자회담 때 중국이 썼다고 합니다. 이 말 외에 무핵화(無核化, 핵을 없앰)라는 말도 씁니다.
그런데 우린 언제부턴가 Nuclear disarmament(핵 무장해제)를 비핵화란 말로 쓰고 있습니다. 비핵(非核)은 '핵이 아닌 것'을 말하고, 화(化)는 변화나 바뀌는 과정을 의미하니, 그 둘을 합하면 '핵이 아닌 것으로 바뀐다'는 말이 됩니다. 핵을 핵 아닌 것으로 바꾸는 것이 비핵화란 얘긴데, 이건 연금술이 아닐까요.
이 말이 핵무기를 없애는 것을 의미하려면, 중국식 표현인 무핵화(無核化)나 제핵(除核), 혹은 멸핵(滅核) 쯤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비핵화'란 말을 모두가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신문들도 거리낌없이 이 말을 씁니다. 우리가 알아듣기 가장 쉬운 말로 하자면, 핵제거(核除去), 핵폐기, 핵포기 정도면 충분합니다.
완전히 없애는 것과 점차적으로 없애가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라면, 제핵과 감핵(減核)이란 표현이면 될 것 같습니다. 좀 길게 쓰면 핵제거와 핵감축으로 쓰면 분명해지고요.
처음엔 낯설고 엉성했던 표현도, 자주 쓰면 그밖의 표현이 없는 것처럼 입에 달라붙어버립니다. 정체불명의 비핵화가 딱 그런 짝인 것 같습니다. 핵 아님으로 만들기? 이 희한한 결론을 내기 위해 남북정상이 머리를 맞대는 것일까요. 이제 역사적인 회담의 핵심 의제로까지 떠오른 이 의문의 낱말. 이것도 핵폐기와 동시에 폐기되어야 할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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