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9월 20일.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 황윤석씨 의문사 사건이 영원한 미궁에 빠졌다. 이날 열린 2심 재판에서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된 남편 손모씨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검찰도 상고를 포기했다.
사건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4월 오전 9시 30분 서울중앙지법 민사1부에 재직 중이던 황씨가 서울 성동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황씨는 전날 감기약을 먹은 채 잠이 들었다가 두번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1954년 32세의 나이로 임관한 국내 첫 여성 판사의 석연치 않은 죽음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황씨의 시신에서 요힘빈 성분이 검출됐다는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현직 여성 판사의 죽음에 소위 '돼지 발정제'로 알려진 약물이 엮이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선정적인 보도 경쟁이 관음적 시선을 더욱 부추겼다. 소문이 소문을 낳았다. 황씨가 생전 자녀를 더 갖기 원하는 시부모와 자주 충돌했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
수사기관은 손씨와 시어머니 차모씨를 독살 혐의로 조사했으나 두 사람은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결국 부검 이후 재부검, 감정 이후 재감정이 이어진 끝에 황씨는 애초에 요힘빈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번복됐다. 이 사실에 주목하는 언론이나 대중은 거의 없었다. 결국 황씨의 사인을 명확하게 밝히는 데 실패했다.
이후 한동안 법정에선 여성 판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씨가 임관한 지 19년 뒤인 1973년에야 강기원·이영애·황산성 판사가 법복을 입었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18년 현재 여성 판사는 총 875명이다. 전체 법관 중 29.8%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여성 판사는 세 명 중 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여전히 법원 안에선 여성이 비주류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 출신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변호사 업계나 검찰보다 법원에서 여성이 빨리 늘었다. 우리 사회에서 우수한 여성이 다른 데서 정당하게 평가받기 어려우니까 법원으로 오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 있다. 김 교수는 "'법원에 여성 수가 늘어나면 조직의 질이 떨어진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판사들이 많았다"고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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