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중국 본토를 잇는 이른바 ‘광선강(廣深港)’ 고속철이 지난 23일 8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정식 개통됐다.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남(廣州南)역에서 홍콩 웨스트카우룬(西九龍)역까지 142km를 잇는 이 노선의 개통으로 2시간 이상이 걸리던 홍콩에서 광저우까지의 이동 시간이 48분으로 단축됐다.
이로써 기존 중국 고속철망과 연계를 통해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 중국 44개 주요 도시로 직접 이동이 가능하게 됐다.
고속철 개통 첫 날에는 여러 가지 진풍경이 연출됐다. 일부 철도 동호인들은 첫 차를 제일 먼저 타기 위해 전날 밤부터 역 앞에서 밤을 새며 기다렸고, 당일 오전 11시경에는 광저우발 홍콩행 열차가 선전((深圳) 인근에서 전력 공급 이상으로 8분간 터널에 멈춰서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개통일인 23일 하루 웨스트카우룬역을 이용해 입·출경한 승객은 약 7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고속철 이용객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 안정화되지 않은 입경 절차와 수하물 처리, 부족한 개찰구 수, 연계 교통편 미비 등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지만, 대다수의 이용객들은 승차감이 좋고 이동 시간이 대폭 줄어든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홍콩 경제계는 이번 고속철 개통이 가져올 새로운 경제적 과실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중국판 실리콘밸리’인 대만구(大灣區) 계획 추진에도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만구는 광둥성 내 9개 주요 도시와 홍콩, 마카오(9+2)를 아우르는 지역을 일컫는다.
홍콩(금융·무역·서비스), 마카오(관광·레저), 선전(IT·벤처), 둥관(제조업) 등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진 도시들이 모여 있다. 대만구의 인구는 약 6700만명,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조5000억 달러(약 1668조6000억원)로 중국 전체 GDP의 14%에 달하고 단독으로도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력을 자랑한다.
고속철 개통과 함께 4분기 안으로 정식 개통이 예정돼 있는 강주아오(港珠澳) 대교(홍콩-마카오-주하이 대교)가 개통되면 대만구 지역이 1~2시간 이내 이동 가능한 명실상부한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돼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제적 통합 효과와 함께 홍콩 관광업계는 고속철 개통으로 인한 ‘반짝’ 특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황금 연휴’인 10월 1일 국경절을 앞두고 중국 본토 관광객이 예년보다 2~30% 정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최근 불황을 겪고 있는 홍콩의 소매업 분야에도 훈풍이 불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 및 부동산 업계는 본토와 빈번한 접촉을 갖는 제조, 무역, 법률, 금융 등 여러 업종의 사무실들이 기존의 홍콩섬 센트럴, 애드미럴티 등지에서 본토와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된 웨스트카우룬 일대로 이전해 새로운 업무 지구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고속철 개통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웨스트카우룬 역의 플랫폼에 중국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세관과 공안 인원을 상주시키고 중국의 법률을 적용키로 한 ‘일지양검(一地兩檢)’ 제도는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민주파는 이 조치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50년간 홍콩 경내에서 고도의 자치를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위배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영국 가디언(Guardian)지가 중국 정부에 임차해 준 웨스트카우룬역 플랫폼 9만3000㎡의 연간 임대료가 겨우 1000홍콩달러(약 14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고속철 개통과 함께 웨스트카우룬 역 일대 건물 임대료가 2~30% 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아직까지 고속철 개통의 혜택도 제대로 보지 못한 소상공업자들과 세입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커진 상태다.
또한 시민들은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개통 및 시승식에서 “(고속철 개통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의 보도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기자들을 압박한 사실과 문회보(文匯報) 등 친중(親中) 언론들이 지나친 미사여구로 고속철 개통을 칭송하는 것에도 염증을 느끼고 있다.
고속철 개통을 바라보는 홍콩인들의 시선에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반환 이후 ‘일국양제’를 보장받기로 약속한 50년 중 절반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경제 밀접화와 인구 구성 변화 등으로 중국과의 통합 속도는 예상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홍콩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국제성과 개방성, 유연성을 바탕으로 중국 본토를 ‘기회의 땅’으로 삼아 허브 도시 지위를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흡수돼 그 빛을 잃고 지방 도시 중 하나로 전락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