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 온 ‘소득주도성장’이 기로에 섰다. 국민 소득을 높여 침체된 내수 불씨를 지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문재인 식 경제 메커니즘이 좀처럼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자 수 증가세는 최근 7개월째 10만명을 밑돌고 있고, 실업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로 가장 높다. 일자리가 늘어야 소득 수준이 올라가는데, 전제가 되는 고용이 악화되다 보니 경제라는 페달을 돌릴 동력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최저임금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 넘게 올랐고, 노동시간은 52시간으로 단축돼 기업 경영 여건이 더 어려워졌다.
기업이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투자, 신규 채용은 씨가 말라 버렸다. 고용 시장이란 파이는 더욱 쪼그라들게 됐다. 일자리 자체가 늘지 않다 보니 소득주도성장이 설 자리를 잃게 돼 버린 것이다.
때문에 국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 때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여야 간 날 선 공방이 오갔다. 앞으로 진행될 국정감사에서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야당 측 비판 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주도성장론’ vs ‘국민성장론’
소득주도성장론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새 ‘국민성장론’이 고개를 들고 나왔다. 국민 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확대되고, 기업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이 소득주도성장론이 그리는 선순환 경제 구조다.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국민성장론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기업 투자가 먼저다. 기업이 투자와 생산을 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국민 소득이 높아진다. 그래야 소비가 늘고, 기업이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기업이 공격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등 여건을 조성해 줘야 신규 투자와 채용이 늘어 고용이 증가하고, 소득 수준도 올라가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親)노동정책’,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재벌개혁이란 ‘반(反)기업·반시장 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란 논란도 연장선상에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창출해 국민 소득을 높이고, 민간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최저임금 인상도 저소득층 임금 수준을 높여 소득을 늘리겠다는 의도였는데, 오히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부담이 커지다 보니 다시 3조원가량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편성했다. 최저임금을 무작정 올려놓고 부작용을 국민의 혈세로 땜질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고용 안정성을 높임과 동시에 소득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직접 추진 중인 정책이다. 정부가 개입해 정부 주도로 경제를 이끌어 가려는 전형적인 ‘큰 정부’의 모습인 셈이다.
반면 ‘작은 정부’는 정부의 경제 개입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일자리를 창출해 국민 소득을 늘리는 일은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정부는 단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다만 시장에만 맡길 경우 불공정 경쟁이 우려되니 관리·감독자로서의 역할은 필요하다.
경제를 시장 자율에 맡기되 정부 간섭은 최소화하라는 작은 정부가 야당이 주장하는 국민성장론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날 기색이 없다. 야당 반발이 더 거세지는 이유다. 올해 4분기 그리고 내년 경제 지표가 보다 악화될 경우 소득주도성장론을 국민성장론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보다 탄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속도조절’ 필요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최소한 임금을 높여 소득을 늘린다는 점에서, 주 52시간 근로 단축은 노동자들이 일상화된 과로로부터 탈피해 연장근로 시 추가 임금을 보장받고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옳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문재인 공약을 지키기 위해 최저임금은 올해 16.4% 오른 데 이어 내년에는 10.9% 올라 시간당 8350원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급작스럽게 오르다 보니 되레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 부담이 커졌고, 그들 밑에서 일하는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난 7월부터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부터 시작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제도 미처 대비하지 못 한 사업장들이 많아 현장의 혼란을 가져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근로시간 단축제 적용에 6개월간 유예기한을 둘 것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방향은 옳았지만 ‘밀어붙이기’로 방식이 틀려 ‘친노동·반시장 정책’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신중론으로 돌아선 것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란 관측이 있다.
◆통계청 '소득양극화' 역대 최악, 소득 분배 악화도 논란거리
올 1분기와 2분기에 되레 저소득층의 소득만 줄어 ‘소득양극화’가 역대 최악이라는 통계청 발표는 소득주도성장에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 사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다는 소득주도성장의 근간을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 논란이 커지자 급기야 통계청장을 경질했다. 통계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계소득 통계조사 방식을 바꾸더니 내년에 다시 바꾼다고 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는 이번 통계 결과가 최저임금 인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밝혔다.
실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소득이 줄었다는 논문이나 통계도 구체적 수치나 근거가 없어 일부 연구원들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밝힌 국감 자료에 따르면 주부, 학생 등 근로자 외 가구의 소득 감소가 하위 60%에 집중돼 있다. 가계의 실제 소비 여력을 보여주는 ‘가처분소득’도 하위 80%에 해당하는 1~4분위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국감에서 소득 분배가 보다 악화됐다는 지적에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 한다면, 그래서 내년에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경제 지표가 나온다면 소득주도성장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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