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노사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며 정치권이 중재에 나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현대중공업 노사와 울산시는 지난 8일 ‘현대중공업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의회’ 첫 회의를 가졌다. 이날 협의회에는 송철호 울산시장, 강환구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박근태 현대중공업 노조지부장 등이 참석해 현대중공업 유휴인력 고용안정을 위한 노사정 상생 협력 방안과 고용·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신뢰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심각한 경영위기에 노사갈등 자력봉합 어려워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는 조선시황 부진이 이어지고 해양플랜트 사업의 일감이 떨어지는 등 위기가 닥쳐오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나스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서 해양사업본부의 일감이 완전히 소진돼 다수의 유휴인력이 발생하자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11월부터 내년 6월까지 평균임금의 40% 휴직수당 지급으로 휴직 허가를 신청해 놓은 상태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임금 협상에서도 회사는 전체 임직원의 기본급 20% 반납을 제안했다. 이에 반해 노조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대치상황이 지속 중이다. 지난 7월 24일 교섭 이후에는 사측 교섭위원의 보이콧으로 교섭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노사정 회의는 노조와 울산시의 제안을 사측이 받아들이며 이뤄졌다. 노조는 올해 초부터 부분파업 등을 벌이다 지난 8월 노사정 원탁회의를 긴급 제안한 바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간 현대중공업의 임단협은 노사가 대치하다가 노조가 파업 등 투쟁을 실시하면 사측이 져주는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올해는 결이 다르다”며 “자칫 노사관계 악화로 인해 현대중공업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며 울산시가 중재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협의회 첫 회의에서 노사정은 상생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자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정은 이달 말까지 수시로 실무진이 참여하는 협의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봉합 가능성은 미지수··· '위기극복 위한 단결' 절실
하지만 이번 협의회를 통해 노사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협의회는 동상이몽에 그치고 정치권을 등에 업은 노조의 투쟁수위만 높이는 것 아니냐는 게 업계의 우려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노조는 오는 17~18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전 조합원 부분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7월 13일 부분파업 및 19~24일 전면 파업과 8월 27~29일 부분 파업, 9월 12일 부분 파업에 이어 올해 다섯 번째 파업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노동조합의 요구로 노사정 협의회가 성사됐음에도 파업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태도로는 노사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측은 사내소식지인 ‘인사저널’을 통해 현장 근로자들에게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설명하고 사측의 비용절감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비용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지난 4일 발행한 인사저널에서 사측은 2008년 GM공장 폐쇄 후 심각한 고용난에 빠진 미국 ‘제인스빌’의 사례를 들었다. 사측은 “우리가 제인스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전 구성원이 뼈를 깎는 각오로 사면초가에 놓인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놔야 한다”며 “경영개선 조치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그동안 누려온 각종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처럼 존폐위기가 눈앞에 다가와야만 고통분담에 동참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중공업 한 관계자는 “경영상황이 좋을 때는 노조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회사가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는 현 상황에서는 경영정상화가 우선이 돼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업계에선 대형 조선3사 중 유일하게 추석 전 임단협을 마무리한 삼성중공업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당초 요구안에서 임금인상 등을 양보한 대신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사측으로부터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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