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가을이다. 후배 기자와 함께 해외 기획취재에 나섰다. 구도심 활성화에 성공한 유럽 도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를 빌려 보름 동안 4개국 여러 도시를 다녔다. 그날은 파리 북부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역을 찾는 일정이었다. 한 사람은 운전을, 다른 한 사람은 지도를 보며 길라잡이를 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되지 않을 때다. ‘미쉐린 지도’가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초행길이라 길눈은 어둡고, 파리 시내 교통은 최악이었다.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멘붕 상태에서 거대한 차량 흐름에 휩쓸렸다. 암담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조직도 마찬가지다.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급류에 떠내려가는 나뭇잎 신세다. 정체성은 불분명하고 공유할 가치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락가락할 뿐이다.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 높이 올라간 자만이 추락한다. 한국당은 한때 높이 올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정치권력을 독점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무려 60년 세월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교활하고 무능했다. 급기야 9년 동안 상상하기 힘든 국정농단이 자행됐다. 이명박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재산을 모으는 데 열정을 쏟았다. 또 4대강, 자원외교라는 이름 아래 국가 재정을 거덜냈다. 박근혜는 이름뿐인 대통령이었다. 꼭두각시 4년 만에 국가 시스템은 완벽하게 붕괴됐다. 이카루스는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끝에 추락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민을 우습게 안 끝에 몰락했다.
흔히 보수를 대표한다는 한국당에는 3P가 없다고 한다. 좋은 정치인(Politician), 좋은 정책(Policy), 합리적인 정책 결정 과정(Process)이다. 그 가운데 좋은 정책과 가치가 핵심이다. 버스로 말하자면 행선지다. 행선지(가치와 철학)가 분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러니 염증과 실망만 쌓인다. 최근 남북문제와 국내 정치에서 보여준 행태가 그렇다. 한반도 문제는 아예 귀를 닫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방북 결과에 대해 한국당만 “진전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네 차례나 평양에 다녀오고, 세 차례 남북정상 회담,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린 게 진전이 아니면 무엇인지.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꽁꽁 걸어잠그고 전쟁위기가 고조되어야 진전인지 진짜 속내가 궁금하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하자는 제의도 거절한 그들이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 절대 불가, 남북 국회회담 불참을 못 박았다.
그렇다고 국내 정치에 유연한 것도 아니다. 국민들 눈에는 무조건 반대요, 발목잡기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추천과 6개 비상설 특위 구성 지연이 대표적이다. 헌재 재판관 추천이 늦어지면서 심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장기화됐다. 6개 비상설 특위 역시 한국당 반대로 80일 넘도록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16일에서야 늑장 합의했지만 여론은 곱지 않다. 사법개혁특별위와 정치개혁특별위는 사법농단을 바로잡고 정치 선진화를 위해 절실하다. 그러나 한국당 반대 때문에 소모적인 정쟁만 반복됐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국민들은 이미 한국당을 심판했고 뒤집었다. 그런데 참회도, 부끄러움도, 변화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3차 남북 정상회담 직전 49%까지 내려갔다. 이후 짧은 기간 다시 70%대로 올라선 의미는 무엇일까. 국민들은 항구적인 평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당만 이런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고립은 당연한 수순이다. 지금은 고립이지만 장기화되면 도태되고, 결국에는 소멸된다. 인물 영입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시대 흐름을 담은 가치관 정립이 선결 과제다. 다윈은 강한 종(種)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종(種)만 살아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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