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80년대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INF 조약은 냉전시대 핵전력 증강 흐름을 군축으로 돌려 놓은 분수령이 됐다. 미국의 INF 파기가 자칫 군비경쟁이 다시 가속화하는 새로운 냉전(신냉전)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0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네바다주에서 유세를 마치고 전용기(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전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수년간 (INF 조약의) 합의를 위반했다"며 "러시아가 합의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합의를 파기하고 탈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합의를 위반했는데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왜 다시 협상하거나 조약에서 탈퇴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러시아가 INF 조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도 핵 군축 바람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로 조약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INF 조약은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형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2600여기를 폐기하도록 하고, 추가 생산·실험·배치도 전면 금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이달 초 "러시아가 INF 조약을 비롯한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아 걱정된다"며 "러시아가 수년간의 부인 끝에 최근 '9M729'라는 이름의 새 미사일시스템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당국은 몇 년 전 러시아가 '노바토르 9M729'라는 이름의 미사일시스템을 실험하고 있으며, 이는 INF 조약 위반일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 외교 라인을 통해 러시아에 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설득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INF 조약에서 탈퇴해야 하는 이유로 러시아와 함께 중국도 거론했다. 중국은 INF 조약국이 아니기 때문에 중거리 핵전력을 강화하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해 태평양군사령관 시절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 낸 성명에서 중국이 INF 조약에 포함된다면, 중국 미사일 전력의 약 95%가 조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INF 조약 파기를 추진한 이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2~23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INF 조약 파기 문제를 논의할 전망이다.
존 커비 CNN 군사·외교 애널리스트는 러시아가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하던 일(핵전력 증강)을 계속 할 수 있는 명분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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