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7.2m, 세로 2.2m 화면에 파도가 넘실댄다. 하얀 물거품이 일고 해안으로 밀려오는 물, 바람, 소리, 빛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담아냈다. 작품은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권순관 작가는 "발레리(Paul Valéry)의 시 '바다의 묘지(Le cimetière marin)'를 읽으며 제주 4∙3항쟁(1947~1954) 때 학살당한 뒤 바다에 버려진 희생자들을 떠올려 시작한 작업이다" 며 "1년여간의 구상과 준비를 마친 뒤 보름간은 낮과 밤의 구분도 없이 파도에 몸을 던지며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촬영 도중에 카메라에 바닷물이 들어가 색 변화가 일어난 것도 그대로 남겼다.
작가는 제주의 파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들의 한이 서려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표선해변을 중심으로 섬 곳곳의 포말을 담았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학고재 갤러리 신관에서 10월 19일부터 11월 10일까지 사진작가 권순관(45) 개인전 '더 멀치 앤드 본스'(The Mulch and Bones)를 개최한다.
멀치(Mulch)는 무언가를 가릴 때 쓰는 덮개를 뜻하는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국가와 사회의 지배 계층이 자행한 물리적, 정신적 폭력과 그 피해를 주제로 삼았다.
전시된 사진 및 설치 작품 18점은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과 그들의 흔적을 쫓는다.
이번 전시에서 권 작가는 신작 사진과 더불어 음향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장 지하 2층에 들어서면 괴이한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DMZ(비무장지대)에서 17시간에 걸려 채집한 소리를 1분 동안 탑을 쌓듯 겹쳐놓은 음향 설치 작품이다.
권순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사진 작업을 위해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지나사의 대형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권 작가는 "촬영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리고 장비 비용은 약 50여 배가 더 들 때도 있지만, 사진 촬영 방식 또한 작품활동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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