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사형당했다. 과두정이 민주정에 자리를 내줄 무렵, 집권세력의 눈에 소크라테스는 소수 현인정치, 즉 과두정을 옹호하는 정적이었다. 광장(아고라)의 자유가 곧 표현의 자유였던 시절, 아테네의 집권세력은 자의적으로 소크라테스를 처벌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기술을 압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술은 시스템을 이용한다.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를 고소했다. 괴상한 논리로 아테네 청년을 현혹하고, 사이비 신을 섬긴다는 게 이유였다. 수백명의 배심원 재판을 거쳐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멜레토스는 집권세력의 하수인이었다. 다수의 배심원이 매수당했을 가능성도 크다. 정치가 법치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치는 법치를 무시하거나 유린하지 못했다. 소크라테스가 도주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독배를 들이켠 건 이 같은 시스템이 붕괴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2018년 10월 18일. 광화문광장에 6만여(주최 측 추산) 택시기사들이 모였다. 카카오 카풀 서비스가 생존권을 위협하고 사유재산을 침범한다고 6만여 기사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법치, 즉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국가라면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는 어떤 형태로든 영업의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카카오가 서비스를 개시하는 건 택시업계나 정부와의 합의 사항이 아니다.
단, 출퇴근 시간을 어떻게 정하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관할부처인 국토교통부가 할 일은 카카오와 택시업계 사이에서 출퇴근 시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카카오의 카풀 영업을 허용하지 않았다. 카풀 사업자와 택시업계 간 협의를 이끌어낸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손을 놓았다. 결과적으로(정확히 말하면 의도일 가능성이 크지만)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택시업계는 공론장으로 나오라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요구를 묵살했다. 장병규 위원장의 말대로 협의에 나서지 않는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정부가 그대로 수용한 셈이다.
카카오의 영업으로 택시업계가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택시업계가 해결할 문제다. 카카오 등 IT(정보기술) 업계의 카풀 서비스를 대항할 만큼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택시업계가 자체적으로 이를 해결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이에 대한 해결 또한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택시기사들의 생존권을 지키고, IT 업계가 택시업계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도록 유도해야 한다.
택시업계는 착각했다. 생존권에 대한 위협이 업계 내부의 문제인지 외부로부터 온 것인지 정확히 알지를 못했다. 사유재산권 침해는 개념 자체를 몰랐다.
정부도 착각했다. 카카오의 카풀 영업에 대한 허용이 정부의 권한이라고 오만을 부렸다. 그것은 법으로 보장된 카카오의 권리다. 이를 수호하는 게 정부의 의무다. 택시업계와 카카오를 중재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오판했다. 중재는 합법적인 영업활동이 상충할 때 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기술이 시스템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택시운전자는 총 26만8600여명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택시운전으로 먹고사는 인구는 얼추 100만명을 넘는다. 절반은 현재 유권자이고 절반은 잠재적 유권자이다. 택시 기사의 경우 풀뿌리 민심을 전달하고, 심지어 형성하는 무시 못할 세력이다. 이번 집회에 6만명이 운집한 건 그들의 조직력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정치의 눈으로 보면 택시업계와 카카오의 갈등은 100만 표와 수천 표의 싸움이다. 법치국가에서 현행법이 택시업계의 떼법에 밀리는 건 전적으로 천박한 정치 기술 때문이다. 시스템이 성숙한 국가였다면, 카카오 카풀 서비스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공권력이 공신력을 담보했다면, 6만여명의 택시기사들이 백주 대낮에 합법적 사업을 막겠다며 광장에 모이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택시기사는 수천만명에 달하는 소비자의 힘을 간과했다.
기원전 399년의 아테네인들조차 정치 기술에 세련미가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법치에 준해 정적을 죽였다. 논리의 달인인 소크라테스조차 자신이 독배를 물리칠 논리를 찾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 정부가 혁신기술을 지닌 사업자에게 독배를 마시라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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