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의 심장으로 불리는 선전에도 무역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수출 증가세 둔화가 완연한 가운데 대기업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자금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22일 중국 해관총서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선전의 수출입 총액은 1조8600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10.2% 증가했다.
이 가운데 수출은 9861억3000만 위안으로 2.6% 감소했다. 중국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5%로 0.1%포인트 하락했다.
주요 수출 대상국 중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수출만 감소했다. 대미 수출은 1753억9000만 위안으로 3.3% 줄었다. EU의 경우 1724억9000만 위안으로 2.5% 감소했다.
선전은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키면서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 억제에 초점을 맞춘 탓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전자제품 수출 물량이 감소하고 있다. 조명기구와 태블릿PC 수출량은 각각 36.1%와 24.5% 급감했다. 액정표시장치(LCD) TV도 1.6% 줄었다.
아직까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휴대폰 수출도 미국이 반도체 공급 제한 등에 나설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경영 일선에서는 자금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의 수출 감소로 납품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협력업체들이 최대 피해자다.
선전 인근의 광둥성 순더(順德)에 본사를 둔 백색가전 기업인 메이더(美的)는 하반기 들어 협력업체에 건네는 어음 만기를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음 만기가 도래하면 6개월짜리 새 어음을 발급해주는 식이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메이더 협력업체들의 유동성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돈다"고 말했다.
글로벌 PC 제조기업인 롄샹(聯想·레노버)도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IBM의 PC사업부문을 인수한 롄샹은 무역전쟁 발발로 미국 내 판매량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부품 공급사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위기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산하의 선전 은감국은 최근 관내 주요 은행에 공문을 발송했다. 대출 상환을 앞둔 기업에 대한 채권단 회의에 반드시 참석하라는 게 골자다.
현지 금융권 관계자는 "디폴트 위기에 처한 기업의 대출 만기를 연장하라는 지침"이라며 "회의에 참석할 경우 만기 연장에 무조건 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무역전쟁의 여파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탓에 기업들의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 금융당국은 상반기까지 민영기업에 대한 디레버리징(부채 감축) 작업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국가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한 기업 대출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하면서 수출 실적 악화와 납품 대금 지급 지연 등에 따른 수출 기업 자금난이 심각해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당국은 뒤늦게 대출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등에 나섰지만 오락가락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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