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찬대 국회의원은 23일 열린 2018년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동성 인천대 총장에게 “인천대는 다른 사립대학이나 국공립대학과 다르게, ‘시립대+거점국립대’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의원은 “인친시민과 정치권,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인천대는 시립대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만큼, 인천에서 거점국립대로의 역할과 함께, 시립대학으로의 역할도 병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인천대가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이란 원대한 포부에 집중해 바이오대학 등 새 사업에 학교의 모든 역량을 쏟지만, 단시일 내에 이룰 수 없는 목표”라며, “그 사이 부패한 사립대를 시립대를 거쳐 국립대학으로 만들어준 인천시민을 위한 역할은 외면되고 있고,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인천대는 1979년 한국의 대표적 부패 사학이었던 옛 선인학원의 공과대학으로 출발했다. 학원민주화 운동으로 단일학교 최초로 1986년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며, 80여일이 넘는 학생들의 수업거부로 몸살을 앓았다. 학내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학원민주화 운동으로 1994년 시립인천대학교로 환골 탈퇴했다.
한국 고등교육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지나한 학원민주화 운동에 인천시민과 정치권 등이 힘을 보태면서, 이룩한 성과였다. 인천대의 시립화는 사적 영역에 있던 교육의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편입시킨 최초의 사례다.
옛 선인학원은 인천지역 사립학교 재학생의 1/3이 다닐 정도로 거대한 사학이었지만, 사학비리로 학생과 학부모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로 인해 인천지역의 학업 수준은 전국 꼴찌란 불명예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선인학원 내 있었던 16개 학교들은 시·공립화 후 안정을 찾았고, 인천대는 시립화 이후 양적, 질적 성장을 가져왔다. 또한 인천시민들은 300만 도시에 제대로된 국립대학이 없는 현실을 감안해 인천대를 국립대학으로 전환을 요구해, 2013년 인천대는 국립대학법인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인천대의 이런 변화무쌍한 변화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등교육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드문 사례다.
이에 박찬대 의원은 조동성 인천대 총장에게 국정감사에서 ‘인천대학원민주화’ 운동에 대한 학술적 정리와 함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조동성 인천대 총장은 “필요한 지원을 해 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대는 내년에 인천대학원민주화 운동 역사 자료 등을 모아 관련 홈페이지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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