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힘으로는 연명할 수 없는 '좀비기업'이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환경에서 부쩍 늘어난 좀비기업이 금리 상승 압력에 직면해 그야말로 한계상황에 몰리면서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좀비기업의 도미노 파산이 세계 경제, 특히 선진국 고용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계기업'이라고도 하는 좀비기업은 말 그대로 반쯤 죽은 기업을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10년 이상 된 기업 가운데 수익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 없는 기업을 좀비기업으로 분류한다. 가만히 두면 파산이 불가피하지만, 정부의 직접 지원이나 호의적인 금융환경 덕분에 간신히 연명하는 기업들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신 보고서에서 선진국의 좀비기업 급증세에 주목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성된 초저금리 환경 속에 늘어난 좀비기업들이 낮은 생산성으로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BIS는 좀비기업 문제로 각국 정책당국이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며, 금리인상이 상당수 좀비기업을 죽일 수 있고 이는 대규모 실업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BIS가 14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좀비기업은 1980년대 말부터 늘기 시작했다. 좀비기업 비중은 당시 평균 2%에서 2016년엔 12%로 높아졌다. 2008년 터진 금융위기가 증가세가 가속화하는 변곡점이 됐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해 말에 낸 보고서에서 선진국의 좀비기업 수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늘었다고 지적했다.
클라우디오 보리오 BIS 통화·경제 담당 책임자는 좀비기업 수는 물론 이들의 생존기간도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좀비기업이 다음 해에도 좀비기업으로 남을 가능성이 1987년엔 40%였지만, 2016년에는 65%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지속된 초저금리 환경이 좀비기업의 생존력을 높였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하나 둘 통화긴축에 나서면서 느슨했던 금융환경이 점점 빠듯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저금리가 총수요와 고용, 투자를 자극한 덕분에 경제가 좀비기업을 떠안을 수 있었지만, 이젠 상황이 여의치 않아졌다는 얘기다.
이오인 머레이 헤르메스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투자 책임자는 "경기침체가 닥칠 수도 있다"며 이는 좀비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좀비기업의 붕괴가 노동시장과 세계 경제 기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가장 큰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머레이는 그러면서도 좀비기업 정리가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좀비기업은 이미 죽었어야 할 존재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살아 남아 사회의 나머지 부분을 황폐화한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