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담판' 전초전인 북·미 고위급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한반도 정세도 중대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한때 빨라졌던 '핵 담판'은 북한의 살라미와 미국의 역살라미 전술로 답보 상태에 빠졌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의 일괄 타결보다는 쪼개기를 통한 이익 극대화 전략을 펴자, 미국 역시 비핵화 타결 시한을 점진적으로 늦추면서 맞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북·미의 힘겨루기로 연내 종전선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교착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미 양국은 북·미 고위급회담을 코앞에 두고 실무협의체인 워킹그룹을 띄웠지만, 되레 남·북 경협의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미국의 견제장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위급→실무' 톱다운 방식…"정치적 담판"
정치·외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미 고위급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포괄적 합의' 여부다. 핵심 의제는 '비핵화·종전 선언·제재 완화'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전세계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북·미 고위급회담의 포괄적 합의의 전제조건은 '북한 핵·미사일 사찰'이다. 그간 미국은 북한에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요구해 왔다.
눈여겨볼 대목은 북·미 간 가동채널이 '고위급→실무' 수순인 톱다운(선 정상 합의-후 실무자 세부합의)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담판'을 통한 타결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다.
북·미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사찰 등에 의견접근을 이뤘다는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카운터파트너는 김영철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이번 회담에서 북·미 양국은 그간 물밑에서 교환한 의제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시도할 것"이라며 "양국이 포괄적 합의에 성공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北美 합의 실패 땐 文정부 외교정책 흔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고위급 간 톱다운 방식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합의는커녕 절충형 빅딜조차 이뤄내지 못한다면 북·미 간 힘겨루기는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컸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달리, 제2차 양국 회담에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핵심 의제의 합의 내지 빅딜이 실패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은 한층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당장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은 내년으로 사실상 순연됐다.
이 경우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속도를 냈던 연내 종전선언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마찬가지다. 한·미 국방당국이 합의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비핵화 없이는 문 대통령 임기 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성과를 내더라도 최종적인 벽은 있다. 북한 비핵화 타결의 범위를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수 싸움이다.
그간 외교계 안팎에선 최종적인 북·미 협상이 미국 본토에 위협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핵탄두 일부를 폐기하는 수준에서 타협하는 안과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밀어붙이는 안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김우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떤 시나리오로 가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공조"라며 "그 위에서 신북방정책을 통한 한·러, 신남방정책을 통한 한·아세아, 한·일 간 협력 구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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