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여행한다]➄책 보는 놀이터...광양 농부네텃밭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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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기자
입력 2018-11-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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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농부네 텃밭에 자리 잡았다. 이름과 달리 도서관보다 놀이터에 가깝다. 비슷비슷한 아파트 놀이터가 아니라, 동화책에서 본 듯 신나는 모험 놀이터다.
 

농부네텃밭도서관에서 나무 피리 만들기 체험을 하는 아이들[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전남 광양시 진상면에 있는 ‘농부네텃밭도서관’에선 주변의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된다.

마당의 잔돌로 땅따먹기 하고, 야트막한 언덕에서 사계절 썰매를 타고, 꽃반지를 만들고 강아지랑 놀기도 한다.

조금 색다른 놀이도 있다. 연꽃 사이로 아담한 연못을 가로지르는 줄배는 텃밭도서관의 최고 인기 종목(?)이다. 배는 아이들 서넛이 타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연못은 아이들 허리 깊이라 안전하다.

연못가 감나무와 느티나무를 잇는 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연못을 건널 수도 있다. 무서울 것 같지만 조금 용기를 내면 대여섯 살 아이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마당 위를 가르며 날아가는 미니 짚라인을 타려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속도가 빠르지 않아 어린아이도 신나게 탈 수 있다.
 

줄배 타기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이 모든 놀잇감이 서재환 관장이 만든 작품이다. 몇만 원을 내고 수십 미터 높이에서 타는 짚라인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충분히 즐겁다.

이렇게 놀다가 지칠 때쯤, 안으로 들어가 책을 읽는다. 예전보다 줄었지만 텃밭도서관에는 지금도 어린이책 수천 권이 고사리손을 기다린다.

텃밭도서관이 이곳에 처음 문을 연 것은 약 20년 전. 지역에서 마을문고를 운영하던 서 관장이 자기 집 텃밭으로 도서관을 옮겨 온 것이 시작이다.

그러면서 ‘농부네텃밭도서관’이라는 멋진 이름을 짓고, 책에서 놀이 위주로 운영 콘셉트를 바꿨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든 농촌 실정이 변화를 선택한 계기다. 전보다 좋아진 학교 도서관도 한몫했다.

수만 권에 이르던 장서를 어린이책 수천 권만 남기고 정리하는 대신, 마당과 연못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모두 서 관장이 어려서 놀던 것, 책을 보며 한번 만들어보고 싶던 것이다.

마당 한쪽 굵은 느티나무 위에 지은 나무 집도 서 관장의 솜씨다. 어릴 때 동화책에서 본 나무 집을 몇 해 전, 뚝딱뚝딱 만들었다.

누구나 올라가서 멋진 전망을 즐기고, 원하면 나무 향이 솔솔 풍기는 아담한 방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다.

농부네텃밭도서관은 입장료도, 놀이기구 이용료도 없다. 단 평일에 단체로 찾아오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손님에게 1인당 입장료 2000원을 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서 관장의 본업이 농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장독대를 가득 채운 항아리에는 직접 농사지은 매실로 담근 장아찌와 청(진액), 된장, 고추장 등이 익어간다.

텃밭도서관이 입소문을 타고 멀리서 오는 이가 많다 보니 점점 손 가는 일이 늘어, 요즘은 민박과 식당을 운영하는 등 수익 사업도 병행한다.

직접 담근 장아찌와 장류, 유기농으로 키운 농산물도 판다.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도서관에서 키운 서 관장의 자식들이 잘 자랐듯이, 이곳을 찾는 아이들도 즐겁게 놀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한다. 오늘도 농부네텃밭도서관에는 따뜻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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