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이 모두 서울대에 합격했다. 조카 손녀의 생일까지 살뜰히 챙기던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였다. 팔순을 앞둔 그녀는 이젠 방 두 칸짜리 아파트와 단지 내 경로당만 오갈 뿐이다. 더 멀리 나갔다간 경찰관의 손에 이끌려오기 십상이다. 매일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식사와 빨래를 홀로 해결하기 힘들다. 치매(인지행동 장애)를 6년째 앓고 있는 나의 작은할머니 이야기다.
지난달 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쪽 외곽의 한적한 도시 베이스프(Weesp)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매 안심마을’, 호흐벡(Hogeweyk)을 찾았다. 마을 입구 문이 열리자, 삼삼오오 산책을 하며 가족들과 담소 중인 밝은 표정의 치매노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할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됐다. 홀로 방에서 하루를 ‘견디는’ 그녀와 호흐벡 마을에서 하루를 ‘즐기는’ 네덜란드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붉은 벽돌 건물 여러 동이 맞물려, 마치 드라마 세트장 같은 호흐벡 마을은 이곳 치매노인들에겐 그저 평범한 ‘우리 동네’다. 입구 왼편 건물에는 슈퍼마켓, 레스토랑, 카페, 펍, 문화센터가 있고 오른쪽 분수대 광장을 지나면 영화감상과 음악회를 위한 극장도 만날 수 있다. 중앙로를 따라가면 미용실, 목공소, 음악감상실도 있다. 치매노인들이 자신의 집(주거동)만 나서면 손쉽게 ‘동네 마실’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임직원은 170명, 자원봉사자는 140명 정도다. 배가 넘는 인력이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셈인데, 이들은 노인들을 ‘환자’가 아닌 ‘거주자’로 부른다. 특히 직원들은 하얀 가운 대신 항상 평상복을 입는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기 집에서 가운이나 환자복을 입지 않기 때문”이다.
호흐벡도 과거엔 평범한 요양원이었다. 당시 간호사였던 호흐벡 창립자, 이본 반 아메롱헨(Yvonne van Amerongen)은 “중증 치매노인은 안 그래도 뇌가 혼란스러운데 주변 환경이 바뀌면 더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그들도 자유롭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완성된 생활양식 공동체 가구는 △도시적 △장인·수공예적 △전통 네덜란드 가정적 △인도네시아풍 △중상류형 클래식 △예술문화적 △기독교적 등 7개의 생활양식에 맞춰 꾸며졌다. 생활양식별로 식사, 취침시간이 각자 다르다. 과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풍 양식 가구의 마당에는 불상이 여럿 보였다.
클래식 생활양식을 선택, 3년반째 거주 중인 남편(75)을 만나러 온 리사(가명·62)는 “전에는 남편이 밤낮없이 집을 나가 실종돼 경찰에 발견되기 일쑤였다”면서 “그는 평소 부르크너, 말러, 푸치니 음악을 좋아했는데 이곳에선 항상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처럼 일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돼 최고의 대처를 한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호흐벡에 거주하려면, 소득에 따라 월 최소 500유로(약 64만원), 최대 2500유로(약 320만원)를 정부에 내야 한다. 정부가 지급하는 노령 기초연금이 매달 850유로 정도라, 저소득층도 충분히 입소할 수 있다. 호흐벡은 정부에서 운영비를 받으니, 입소자들은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현재 전세계 국가들은 앞다퉈 호흐벡 마을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미국, 호주에 이어 중국도 최근 설립을 고려중이다. 아메롱헨은 각 나라의 생활특성에 맞게 만들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이전과 다른 방식의 사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환자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강한 당부였다.
《취재 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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