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자본시장에는 국경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요사이에는 더욱 그렇다.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말을 바꿀 때마다 전 세계 자본도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다니기 바쁘다. 외국인은 10월에만 코스피·코스닥 주식을 4조5000억원어치 팔았다. 거꾸로 외국인은 이달 2일 하루에만 5700억원어치를 샀다. 방송이나 신문 해설기사는 이 기간 '트럼프 탓에 팔았다'에서 '트럼프 덕에 샀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더 들여다보면 자본은 여전히 국적을 따진다. 우리나라에서 영업하는 한 일본계 자산운용사를 예로 들자. 주로 일본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를 팔아왔고, 요즘 수익률은 매우 좋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최근 5년 사이에만 60% 넘게 올랐다. 그래도 우리 기관투자자는 이 회사에서 파는 펀드를 외면한다. 일본계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우리 기관투자자도 자국 편향적이어서다.
심지어 국내 연기금에서 일해온 한 운용역은 이렇게 말했다. "국정감사에 불려다니기 싫다. 일본펀드에 돈을 넣으면 전범기업에 투자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국내 기관투자자는 한술 더 떠 먼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유럽 현지에서 일본펀드를 사면 일본에 투자했다는 꼬리표가 남지 않는다.
자승자박으로 볼 수밖에 없는 구석이 많다. 금융산업은 규제산업으로 불려왔다. 1등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조차 인·허가 지연으로 새 사업에 나설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도 얼마 전 "금투업 규제가 1474개"라고 지적했다. 시장이 커질 만하면 규제가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키울 만한 산업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금융은 성장 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얼마 안 남은 산업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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