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여야 협치를 내내 강조해왔던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여야정상설국정협의체 첫 회의를 열고, 경제·민생과 관련된 입법·예산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은 먼저 경제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소상공인·자영업·저소득층을 지원하는 한편,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탄력근로제는 주 52시간 원칙을 한 주 기준이 아니라 분기나 반기, 또는 1년을 단위로 평균을 내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는 제도다. 업무가 몰릴 때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업무가 적을 때는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사용자 측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야당 원내대표들은 △최저임금 속도조절 △탄력근로제 확대 등 노동정책 유연성을 주문하면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소득주도성장 기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정·청은 그동안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민주노총까지 포함해 출범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회로 넘기면 입법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다만,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함에 따라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추진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국회 입법을 서두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국회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여야가 절충안을 마련한다면 6개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완화가 주52시간 근무제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갈등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여야는 일자리 창출과 노사 간 새로운 협력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초당적으로 지원키로 했지만, ‘광주형 일자리’ 역시 노조가 불참할 것으로 보여 난관이 적지 않다.
여야정은 경제활력을 위한 규제혁신을 신속히 추진키로 하고, 추가적인 규제혁신 관련법 및 4차 산업혁명 관련 법 등의 처리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특히 정부의 블록체인·암호화폐 정책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 정무위원회 내에서는 이달 정기국회 안에 암호화폐공개(ICO) 허용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정무위 소속 여야의원들은 ICO의 단계적 허용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위한 법 개정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합의문에는 관심을 모았던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 문제나 특별재판부 설치 등 핵심 쟁점이 담기지 못해 구체적인 진전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현재 진행형이라면서 국회가 환영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연내가 될지 (내년) 1월 이후가 될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지만 일단 연내에 이뤄진다는 것을 가정하고 준비한다"면서 "국회가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에 대해 지금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하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좀 환영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공기업 고용세습 문제의 국정조사 등을 요청하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선 내년 1월까지 채용비리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비리에 대해선 단호히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요구한 데 대해선 "우리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표방했지만, 이는 장기적인 것으로서 정책 기조가 60년이 이어져야 탈원전이 이뤄진다"고 설명하면서 "임기 중에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진 비공개회의와 오찬은 애초 오후 1시께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비공개회의만 오후 1시까지 진행된 탓에 오찬은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 늦어진 오후 2시께야 마무리됐다.
오찬에는 영조 시절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 처음 오른 음식으로 알려진 탕평채가 올랐다. 청와대는 치우침 없이 조화와 화합을 이루자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여야정상설국정협의체 첫 회의는 협치의 제도화라는 첫발을 내디뎠다는 성과도 냈다.
문 대통령은 회동을 마치고서 "오늘 이 자리가 고맙다. 첫 출발이 아주 좋았다"며 "적어도 석 달에 한 번씩은 모이는 걸 제도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논의할 게 생기면 중간에라도 만나자는 게 내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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