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무역상대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 이른바 명목실효환율(NEER) 기준 달러 값이 '플라자 합의'가 성사된 1985년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플라자합의는 미국 영국 독일(당시 서독) 프랑스 일본 등 당시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이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에 모여 달러의 초강세 행진을 막기 위해 시장 개입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달러 강세 움직임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제2의 플라자합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일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인용해 61개국 무역량을 반영해 산출한 명목실효환율 기준 달러지수(2010년 100 기준)가 지난달 말 128.51로 1985년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명목실효환율에 물가변동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REER)은 2002년 최고치에 근접했다. 신문은 지난 6일 미국이 중간선거를 치른 뒤에도 달러 강세 추세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 배경으로 미국의 강력한 경제 성장세를 지목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의 실질 성장률이 2.9%로 2005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몸마 가즈오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0년만 봐도 미국이 1강으로 돋보이는 국면에서는 돈이 미국으로 빨려들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으로 흘러드는 글로벌 자금이 달러 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자금이 달러 자산으로 수렴하면 신흥시장은 직격탄을 맞는다. 달러빚 상환 부담이 커지고, 수입품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7개 주요 신흥국의 올해 물가상승률은 4.2%로 연초 대비 0.6%포인트 올랐다. 세계은행은 인플레이션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달러 강세는 미국 경제에도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 수출 채산성이 떨어져 미국 다국적 기업의 실적이 나빠질 수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이유로 달러 강세를 경계해왔다. 그가 최근 연이은 발언으로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기조를 맹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준이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며 달러 강세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강세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자, 일각에서는 제2의 플라자 합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은 독일과 일본이 플라자합의로 마르크화와 엔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기로 하면서 달러가 50% 절하돼 경제호황을 누렸다. 당시 미국과 첨예한 무역갈등을 빚던 일본은 엔화 강세(엔고) 직격탄을 맞아야 했다. 이는 일본이 뒤따라 진입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는 장기불황의 불씨가 됐다.
30여년 전 미국과 일본의 무역 및 환율갈등 구도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닮았다. 미국은 당시 일본에 그랬던 것처럼 중국을 상대로 무역불균형과 위안화 약세를 문제삼고 있다. 중국이 일본이나 독일처럼 순순히 총대를 멜 공산은 크지 않지만, 미·중 무역전쟁에서 환율이 무기로 부상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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