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깊은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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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11-12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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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가수트라 I.38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


수메르왕 구데아의 잠
구데아는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도시인 라가시(오늘날 알-히바)를 기원전 2144년부터 2124년까지 다스리던 수메르의 왕이다. 그는 다른 고대 왕들이 그렇듯이 자연의 운행을 관장하는 신들을 숭배하는 자였다. 라가시는 움마, 우룩과 같은 주변의 다른 수메르 도시국가들과 국경분쟁으로 자주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신 ‘닌기르수(Ningirsu)'를 라가시의 주신(主神)으로 모셨다. 구데아는 닌기루수신을 위해 웅장하고 아름다운 신전을 건축하기로 결정한다.

구데아는 그 신전을 어떤 모양으로 건축할 것인가? 고대인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해 특별한 의례를 행한다. 바로 ‘잠’이다. 잠은 의식 상태에서 떠올릴 수 없는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무의식의 상태다. 유일신 종교의 조상 아브라함은 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 위해 특별한 동물과 새들을 선별하여 반으로 갈라놓은 후, 신과 만나기 위해 깊은 잠으로 들어간다. 잠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혼돈이자, 자신이 버려야 하는 과거다. 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위한 새로운 질서와 미래를 준비한다.

구데아는 닌기르수 신전을 건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얻기 위해 신전으로 들어간다. 신전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자신을 의도적으로 유리하여, 구별된 장소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구데아는 목욕재계하고 거대한 신전 안의 특별한 공간에 좌정한다. 그는 세상의 번잡한 소리를 멀리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그는 라가시의 왕으로 닌기르수 신전을 건축하여, 도시를 강화하고 시민들을 하나의 이념으로 묶어 다스릴 것이다.

닌기르수 신전 안에 위치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인 ‘지성소(至聖所)'로 들어가 그 가운데 마련된 침대에 반드시 누워 한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침묵의 소리가 들리고 칠흑과 같은 어둠이 선명해졌다. 그는 일상과 거룩함의 경계에서 헤매다 특별한 지경으로 들어간다. 구데아는 이 특별한 경험을 새로 지은 신전의 주춧돌에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1878년 라가쉬의 닌기르수 신전인 ‘에닌누’ 신전에서 거의 4000년전에 기록된 수메르어 쐐기문자 토판문서들을 발견하였다. 이 토판문서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이 토판문서들은 구데아의 그 당시 기분과 감정, 그리고 자신이 신전에서 잘 때 꾼 꿈을 자세하게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한다. “닌기르수 신이 나에게 신전을 재건하라고 구체적인 지령을 내렸다.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하늘과 같이 거대하고 땅과 같이 광활하다. 그의 상반신엔 님두구드 새(괴조)의 날개가 있었다. 그의 하반신은 폭풍이 휘감고 있었다. 그의 좌우에는 웅크린 사자가 있었다. 그가 나에게 신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두 번째 영웅이 등장했다. 그는 팔들을 구부려 내 손에 청금석으로 만들어진 석판을 올려주었다. 그는 지어진 신전의 도면을 그렸다. 그는 내 앞에 정화된 벽돌 나르는 나무통과 벽돌을 만드는 주형틀을 놓고 ‘운명을 결정할 벽돌’로 정했다”

첫 번째 벽돌의 크기와 모양을 정하는 것은 왕의 책임이다. 그는 꿈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바꿀 벽돌의 모양을 결정한다.
 

'닌기루스 신전 건축 원통형 비문' 기원전 2135년, 테라코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요가는 인간 삶의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들을 인식하고 장악하는 훈련이다. 한순간도 거를 수 없는 들숨과 날숨, 즉 호흡은 요가훈련의 기반이다. 숨과 더불어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 바로 잠이다. 인간은 잠을 자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한다. 잠은 자연적이며 의도적인 자기몰입이다. 주변의 소음이나 움직임을 제거하거나 상관하지 않을 때, 나는 잠이 든다. 혹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 안의 무엇인가가 나에게 잠을 명령한다.

인간 삶의 1/3을 요구하는 잠이란 무엇인가? 잠이나 꿈은 깨어있는 2/3보다 이해하기 힘들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의식은 뇌, 신경, 그리고 오감을 통해 작동한다. 요가에는 이 의식을 ‘마나스(manas)'란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마나스는 오감을 통해 주변을 인지한다. 그러나 인간의 오감으로 인지 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세상이 돌아가는 움직임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우주의 운행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는 지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깊은 잠과 꿈은 인간의 마음을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주변을 감지하던 오감의 스위치는 잠기고, 뇌와 신경의 활동은 수면 상태로 진입한다. 의식의 마음인 ‘마나스’는 휴식을 취한다. 이때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마음속 깊은 심연에 저장된 기억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 마음은 깨어있는 동안에서는 활동하지 않고 의식의 경계 밖에 있다. 우리는 이 의식을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무의식’이란 용어는 ‘의식’이란 용어의 반대개념으로 만들어진 수동적이며 제한적인 용어다. 오히려 우리 마음속에는 무한하고 광대한 의식이 존재하며, 깨어있는 동안 인간이 의식하는 부분은 그 일부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란 책에서 인간의 마음 구조를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설명하였다. 첫 번째는 ‘의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활동의 일부분이다. 두 번째는 ‘잠재의식’으로 우리가 기억을 통해 알 수도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시절을 기억하여 더듬다보면, 떠오르는 얼굴이나 사건이 있다. 이것은 ‘잠재의식’ 속에 존재한다. 세 번째는 ‘무의식’이다. 우리가 그런 것을 알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야구장에서 갑자기 날아오는 공을 피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드(id)'라고 불리는 무의식으로 생명을 지향하고 죽음을 회피하려는 본능적인 마음이다. 프로이트는 문명은 인간의 무의식 속의 가장 깊은 곳인 ‘이드’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구데아' 기원전 2090년, 섬록암, 44 x 21.5 x 29.5 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요가수트라' I.38
파탄잘리는 인간의 무의식을 장악하는 잠과 꿈을 요가수련의 중요한 단계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스바르파-니드라 즈나나-아람바남 바(svapna-nidrā jñāna-ālambanam vā)" 이 문장을 번역하면 이렇다. “혹은 (요가 수련자는 삼매경을) 깊은 잠에서 꾸는 꿈으로부터 나온 지식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 파탄잘리는 요가수련 방해로부터 벗어나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는 삼매경을 ‘깊은 잠과 꿈’에서 얻는 통찰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깊은 잠’이라고 번역된 단어 ‘니드라(nidrā)'는 단순한 잠(드라)이 아니라, 마음이 온전히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에서만 진입 가능한 ‘깊은(니)' 잠이다. 깊은 잠을 통해 의식이 깨어있는 동안 온전히 활동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깊은 잠은 우리에게 ‘렘’을 선물한다. 렘은 (수면 중의) 급속 안구 운동을 의미하는 Rapid Eye Movement라는 영어표현의 첫 글자를 떼어 만든 용어다. 렘 수면상태는 몸은 자고 있으나 뇌는 깨어있는 상태로 눈의 움직임을 통해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파탄잘리는 깊은 잠은 삼매경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을 온전히 버리고 자신을 백지상태로 진입시키는 잠은, 새로운 자신을 위한 주요한 출발점이다. 어린아이가 온전히 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안고 있는 엄마를 완전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정신세계를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만일 내가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면, 나는 정상적이며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깊은 잠과 그 안에서 보고 느끼는 꿈(스바프나)는 내가 깨어있을 때 의식하지 못하는 나의 원대한 꿈에 대한 지혜가 될 수 있다. 파탄잘리는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하루의 1/3을 차지하는 잠을 위해 몸과 마음을 정리하였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심연에 숨어 있는 당신만의 원대한 꿈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나는 깊은 잠을 잘 수 있는가? 깊은 잠을 통해 얻는 통찰력으로 하루를 계획하고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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