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개인정보, 망 사용료, 승차공유, 확률형 아이템'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대표적인 규제로 꼽히는 대상들이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산업 진흥을 외치고 있지만, 기업들은 정작 규제에 짓눌려 성장 동력이 꺾인 지 오래다.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 세계 각국이 기업을 독려하며 나서는 것과 반대로, 국내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에 발목 잡혀 경쟁에서 밀리는 실정이다.
◆보편요금제 도입, 알뜰폰 업계 고사 위기··· 개인정보 비식별 활용 답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가계통신비 인하를 근거로 월 2만원대를 요금으로 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 해당 개정안을 국회에 넘겼다. 이에 국내 이동통신 3사를 중심으로 업계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들끓었다. 데이터 소비량 증가가 필연적인 5G(세대) 이동통신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임과 동시에 기업들의 불완전 경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알뜰폰 업계의 경우 이통 3사의 2만원대 요금제가 출시되면서 고사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순감폭 기준으로 5월 4만명, 6월 6만명, 7월 17만명, 8월 19만명으로 알뜰폰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이탈하고 있다. 정부가 이통3사의 독점적인 경쟁구도를 막고 가계통신비 인하로 추진했던 알뜰폰이 보편요금제라는 새로운 규제로 사장(死藏)되고 있는 셈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인 개인정보 분야도 규제에 가로막힌 채 표류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활용 가능한 데이터가 미국이 23만300개, 영국이 4만4000개인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2만5000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빅데이터 활용과 분석 수준도 63개국 중 56위에 그치며, 국내 기업의 빅데이터 이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27위로 집계됐다.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경우 민간에 적용되지 않으면서 AI 의료기기 개발 활성화가 더딘 상황이다.
유럽연합(EU)이 지난 5월부터 발효한 개인정보보호법(GDPR)도 빅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면서도 삭제권, 이동권 등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강화했다. EU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 의무 수준을 높여 공정한 환경을 조성하고, 개인이 스스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 반면 우리나라는 개인정보와 비식별화된 정보로 구별하고 이들 정보의 활용에 대한 차별적 규제 원칙이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고 있다.
◆카카오 차량 공유 서비스 공회전···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게임 산업 벼랑 끝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업체들이 국내에서 망 사용료 지불 없이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점도 정부의 규제가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망 사용료는 구글과 페이스북·네이버·카카오 등 콘텐츠사업자(CP)들이 통신망을 제공하는 이통사들에 내는 돈이다. 국내 대표 포털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통신사 망을 사용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등 해외 업체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아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높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카카오의 차량 공유 서비스도 정부의 규제로 성장이 가로막힌 단적인 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택시 업계와 상생 방안 마련을 병행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며 발을 뺀 상황이다. 향후 자율주행차 산업을 위한 초석이 될 차량 공유 서비스가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차량 공유 플랫폼 전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는 지난해 약 8조4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경쟁사인 리프트도 시장가치 110억 달러 이상 회사로 성장했다.
게임 업계도 확률형 아이템 등 각종 규제로 시름하고 있는 실정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 돈을 주고 구매하지만 그 효과나 성능은 확률에 따라 결정되는 상품으로, 최근 국회 국감장에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가 출석해 더욱 화제가 됐다.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규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기업들의 자율규제에 맡겨야 한다는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여기에 온라인게임 월 결제한도, 청소년이용불가 등급 규정 강화 등이 업계를 옥죄는 규제로 거론되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은 "규제는 4차 산업혁명 지연의 원인"이라며 "블록체인 분야만 놓고 봐도 한국을 떠나는 기업들로 인해 국부 및 기술 유출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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