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세대) 이동통신(이하 5G)' 시장을 잡기 위한 각국 정부와 기업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5G는 초고속, 초연결 등 이전 세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성을 갖춘 통신서비스로, 후발주자에겐 선두 기업을 넘어서거나 격차를 좁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 통신장비사들은 높은 기술력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무장, 세계 시장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의 일환으로 미국이 보안 우려를 제기하면서 미국은 물론 호주·영국 등이 잇따라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고 있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게 문호가 상대적으로 넓어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이 같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어부지리의 묘수를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화웨이와 ZTE의 통신장비 기술력은 에릭슨과 노키아 등 전통 강자 대비 1분기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격은 40% 가까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통신장비 시장은 현재 중국 화웨이와 스웨덴의 에릭슨, 핀란드의 노키아 3강 구도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통신장비 시장점유율 1위는 화웨이(28%)이며, 에릭슨과 노키아는 각각 27%, 23%로 뒤따르고 있다. 중국의 다른 제조사 ZTE의 점유율(13%)까지 포함하면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어선다. 반면 삼성전자는 점유율 3%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 속에 미국은 중국 통신장비에 보안 허점을 노린 악의적인 프로그램(백도어)이 내장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화웨이와 ZTE의 통신장비를 배제하는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이달 초 이동통신 인프라에 대한 보안성을 검토하기 시작, 사실상 화웨이 5G 장비를 겨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앞서 4월에도 같은 이유를 들어 ZTE 장비 사용에 대해 경고했다. 호주 정부 또한 지난 6월 자국 이동통신사들이 5G 망 구축 시 중국 통신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압박한 바 있다. 이 같은 기류는 후발주자 국내 제조사인 삼성전자에 큰 호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초고주파(6GHz 이상 고대역 주파수)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 2012년부터 5G 장비 연구개발(R&D)에 착수했다. 2013년 5월 주파수 28GHz 대역에서 1Gbps 이상 전송속도와 최대 2㎞에 이르는 전송거리를 달성한 기술을 시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주파수 28GHz 대역은 3.5GHz 대역과 함께 5G에 활용될 주파수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이통 3사의 보조에 맞추면서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미국 이동통신사들로부터 5G 장비사로 선택받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LTE 장비에 28GHz 대역의 5G 고정형무선액세스(FWA)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5월에는 4위 이동통신사 스프린트와 5G 기지국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 9월에는 에릭슨, 노키아 등과 2위 이동통신사 AT&T가 선정한 5G 장비업체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삼성전자는 화웨이와 ZTE를 5G 네트워크 시범 테스트 기업 명단에서 제외한 인도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 인도 2위 이동통신사인 인포텔에 4G 통신 장비를 공급한 바 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5G 통신장비 시장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관계자는 “삼성전자의 5G 통신장비가 미국 이동통신사로부터 연달아 선택받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중국 장비가 배제된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중국 통신장비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국내 이동통신 3사에도 호재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최대 20조원에 달하는 국내 5G 통신장비 시장에 화웨이가 가성비를 앞세워 입찰에 참여하면서다. 그동안 노키아와 에릭슨, 삼성전자 등 3개사에서 화웨이까지 선택지가 넓어져 이동통신사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가격 협상을 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SK텔레콤과 KT는 통신비 인하로 인한 실적 악화와 5G 설비 투자비 절감 등을 이유로 이례적으로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중국 통신장비 선택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압박과 국내의 부정적 여론 등을 감안해 최종적으로 화웨이를 제외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화웨이를 활용해 경쟁 통신장비사의 입찰가를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KT가 SK텔레콤보다 한 달 넘게 5G 장비사 선정을 완료하지 못한 것도 가격 협상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동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SK텔레콤과 KT가 국내외 정치적인 압박으로 인해 화웨이 장비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장비 공급사의 가격을 낮추는 전략에 활용했다”며 “화웨이가 제시한 가격만큼 낮추진 못했어도 투자비 부담은 어느 정도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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