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2주차 주말 184만명 관객돌파 '개싸라기 흥행'
최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입소문을 타면서 살짝 늦은 흥행 바람을 타자, 13일 이런 제목이 신문에 등장했습니다.
다른 데는 거의 쓰이지 않고 주로 '흥행' 앞에만 붙어 함께 쓰이는 '개싸라기'는 대체 무슨 뜻일까요.
개봉 주보다 다음주인 2주차에 더 많은 관객이 몰리는 현상이 개싸라기 흥행이라고 합니다. 먼저 본 관객들의 호평과 재관람이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개싸라기는, 영화 자체가 지닌 흥행력을 말해주는 뿌듯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말은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아,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정확한 어원과 의미를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개싸라기의 어원이 일본어 '게츠아가리'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게츠아가리'란 말은 2003년 경향신문의 <'윤석화가 만난 사람' 무성영화 마지막 변사 신출(2003.1.27)>에서 신출의 말 속에 등장하네요. 이 말에 오래 전에 공연계에서 쓰던 말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답 형식으로 진행된 이 기사의 그 대목을 한번 볼까요.
▲윤=예술인생은 무대 악극에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언제 변사가 되셨습니까.
▲신=열두살에 집을 나와 평양 가실극장에서 식음료를 팔고 청소도 하며 생활했는데, 악극 장면중 물에 빠져 죽는 연기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제가 그 역을 맡으며 무대와 인연을 맺었죠. 당시 극장에서 악극도 하고 무성영화도 상영했는데, 일본어로 ‘게츠아가리’(영화의 인기가 치솟아 나날이 관객이 증가하는 현상)는 영화 ‘아리랑’을 상영할 때였죠. 인기변사인 김선동씨가 전날 폭음을 하고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제가 대타로 나선 게 첫 무대였죠. <경향신문 2003.1.27 '윤석화가 만난 사람' 중에서>
게츠아가리는 尻上(が)り(엉덩이쪽이 떠오르다) 月上(が)り(달이 떠오르다)에서 나온 말로 짐작되는데, 뒤로 갈수록 높아진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러나 게츠아가리가 개싸라기로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군요.
그보다는 차라리, '금싸라기'라는 말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이 나옵니다. 금싸라기는 금의 부스러기를 뜻하는 말인데, 드물고 귀중한 것을 가리키죠. '금싸라기 같은 땅'이란 용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치가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싸라기는 부스러진 쌀알을 말합니다. 싸라기눈이라고 할 때 쓰는 그 싸라기죠. 금(金)은 덩어리도 귀중하지만, 그것이 부스러진 알갱이조차도 귀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게 금싸라기일 것입니다.
개싸라기는, 가치가 적고 흔하고 천한 것에 붙이는 '개'에 부스러기인 '싸라기'가 붙은 말로 볼 수 있죠. 즉 금싸라기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알갱이들이 모이니 가치가 못지않은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개봉 첫주부터 수백개의 스크린을 확보해 단기간내에 대박을 내는 배급방식인 와이드 릴리스(Wide Release)로 흥행 공식을 쓰는 방식이 '금싸라기 흥행'이라면, 그것은 못되지만 허접한 낱알갱이를 긁어모으듯 불어나 마침내 흥행의 탄력을 받는 것이 개싸라기 흥행이 아닐지요.
발음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게츠아가리가, 연상하기 좋은 우리말인 개싸라기로 슬그머니 옮겨탔을 가능성도 있으나 추측일 뿐입니다. 주로 공연이나 영화같이 흥행에 예민한 분야에서 은어처럼 썼을 그 말이, 이젠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급속도로 번지는 개싸라기 현상으로까지 진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전문가의 질정(質正)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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