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법을 만드는 입법(立法)은 이제 더이상 정부나 국회의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시민이 주도적으로 법을 만들거나 바꾸는 새로운 트렌드(trend)가 자리 잡고 있다. 내 삶에 필요한 법이라면 누가 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든다. 입법을 위한 플랫폼(platform)도 다양해졌다. SNS, 블록체인 등 IT와 정치가 만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암호화, 분산화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미래의 선거를 바꿀 전망이다. 블록체인을 통한 투표는 주어진 시간 내 투표소를 직접 가야만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투표가 가능하다. 투표 기록이 투명하게 저장되기 때문에 보안 상의 우려도 해소했다. 탈중앙화 방식이 투표 시스템에 적용되면서 직접민주주의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관위는 이달 말이나 내달 초쯤에 ‘블록체인 기반 케이보팅(K-Voting)’ 시스템을 공개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블록체인 기반 케이보팅 시스템 기술 개발은 끝났고, 시범 적용할 대상을 선정하는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시범 대상은 금융투자협회 소속 민간 금융회사나 고등학교가 될 전망이다.
우선 선관위는 블록체인 기반 케이보팅을 민간회사와 학교에 시범 적용하고, 피드백 과정을 거쳐 추후에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시스템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기존의 온라인 투표 시스템인 케이보팅과 병행해서 운영한다.
블록체인 기반 케이보팅 기술 개발에 참여한 동상호 (주)한국전자투표 연구소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존의 전자투표 시스템은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저장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해당 기관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우려가 있다”며 “물론 시스템적으로 위·변조를 막고 있지만 어느 특정 사람이 운영하게 되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 소장은 “블록체인 기술은 네트워크 참여자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 위·변조 문제를 기술적으로 개선했다”며 “오프라인 참관인이 투표를 진행할 때 직접 데이터를 확인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2013년부터 케이보팅 서비스를 운영해왔다. 케이보팅은 PC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투표할 수 있는 전자투표시스템이다. 선거인은 모바일에 전송된 주소로 접속해서 본인인증 과정을 거친 후 투표하면 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민주평화당이 지난 8·2 전당대회에서 이용했다. 자유한국당과 옛 국민의당도 지난해 6월과 8월에 각각 케이보팅을 통해 당대표를 선출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투표 방식은 전통적 방식이다. 지방선거를 비롯해 총선·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 선거인은 투표소로 직접 가야 했고, 시간도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로 제한돼 있다. 부재자 투표 제도(2014년 폐지)나 사전투표 제도가 없던 때에는 타지에 있을 경우 투표를 아예 포기해야만 했다.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참정권이 침해받았던 것이다.
케이보팅 시스템이 이 같은 제약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평가받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바로 보안이다. 투·개표 과정에서 혹시라도 조작과 해킹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참여자끼리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투표는 미국에서 더 활발히 활용 중이다.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주정부는 지난 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불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투표를 진행했다. 버지니아 주정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이 현지에서 모바일을 통해 원격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버지니아 주정부는 지난 5월 치러진 예비선거에서도 해외 파병 군인들을 대상으로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투표를 시범 실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모바일 투표 앱 시스템 제작사인 보아츠(Voatz)의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투표 솔루션을 적용했다. 선거인의 투표 정보를 블록체인 기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저장하고, 주정부 관계자들이 이 정보를 불러내 투표용지에 인쇄해 집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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