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北京 )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달려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허베이(河北)성 랑팡(廊坊)시 원안(文安)현. 이곳은 벌써 몇 주 째 잿빛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저기 밀집된 합판 공장 굴뚝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와 180도 다른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원안현에 있는 수 천 개 영세 합판공장은 문을 닫았고, 수 십개 중대형 합판 공장도 일제히 감산에 돌입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당시 이 소식을 보도하며 중국의 강력한 환경보호 의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런데 1년 만에 이곳은 다시 예전의 '오염 마을'로 되돌아간 모습이다.
이는 중국이 지난 수 년간 강력히 추진해 온 ‘대기오염과 전쟁’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5일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중국 당국이 화석연료 사용 규제와 미세먼지 절감 목표를 완화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달 중국 환경당국은 내년 3월까지 베이징 일대 26개 도시에서 지름 2.5㎛ 이하 초미세먼지(PM 2.5) 감축 목표를 올 초 제시한 5%에서 3%로 더 낮췄다. 이는 지난해 목표치인 15%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리간제(李干杰) 생태환경부장은 올 겨울 미세먼지 단속에 있어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제창한 '환경오염과의 3년 전쟁'이 무색해진 모습이다.
환경보호를 이유로 공장 가동까지 중단시키면 가뜩이나 무역전쟁 영향으로 수익이 쪼그라든 제조업계 경영난이 더 악화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민심 동요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은 지난해에도 석탄 난방을 가스 보일러로 교체하는 ‘메이가이치(煤改氣)’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일부 주민들이 엄동설한에 추위에 벌벌 떠는 ‘가스대란’ 사태를 초래했다.
앞서 언급한 원안현 같은 경우 목재합판 산업이 지역경제 주축이다. 여기서 생산된 합판은 중국 전체 합판 생산량의 7분의 1을 차지한다. 이곳의 수만 명 주민과 이주 노동자들이 합판 산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미국산 목자재에 25% 관세율을 부과하고, 미국은 중국산 목재 합판에 최고 378% 반덤핑 반보조금 관세를 부과하며 이곳 합판산업은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공장가동까지 중단하면 주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지난해 환경단속으로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서는 임금체불도 잦았다.
위안강밍 칭화대 경제학교수는 "중국이 경제를 위해 환경목표를 조정한 것은 예전에도 이미 그래와서 별로 이상할 게 없다"며 "중국 정책결정자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역전쟁으로 경기둔화가 더 악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컨설팅 회사인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의 로실리아 야오 애널리스트는 "중국 지도부는 경제 불안과 민심에 아주 민감하다"며 인프라 투자 위축, 무역전쟁 등이 경제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환경당국도 경기둔화를 초래했다는 질책은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엔 올 겨울 또 다시 스모그가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14일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중국 수도권(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에는 PM2.5 수치가 200~300㎍/㎥까지 오르는 등 강력한 스모그가 엄습했다. 베이징시는 14일 스모그 황색 경보(세 번째 높은 단계)도 발령됐다. 올 겨울 첫 스모그 예비 경보다. 실제로 이날 베이징에는 공기질량지수(AQI)가 300에 육박하는 등 한 치 앞의 고층 건물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스모그가 꼈다. 베이징 인근이 13개 고속도로는 양방향 통행이 폐쇄됐을 정도다.
차이파허(柴發合) 대기오염방지센터 부주임은 "12일부터 징진지와 주변 지역에 남쪽에서 불어온 약한 바람이 대기 순환을 막으면서 오염물이 쌓인데다가 북부 지역 난방 가동이 시작되면서 오염물질 배출량이 증대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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