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넘쳐나면서 경기 화성, 용인, 평택, 파주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나타나고 있다. 지은 지 오래된 기존 아파트를 중심으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빈집이 늘고 있으며 신규 아파트도 수천만원 내린 가격에 전세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도 신규 입주단지를 중심으로 수백 건의 전세물건이 한꺼번에 나와 전셋값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급 과잉에 따른 전세매물 적체 현상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2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경기도 전셋값은 올 초부터 지난달까지 월간 단위로 한 번도 쉬지 않고 뒷걸음치면서 이달 현재까지 2.57% 하락했다. 특히 올 들어 입주물량이 집중됐던 안산과 용인, 평택, 파주 등에서 전셋가격이 크게 내렸다.
안산시 전셋값이 같은 기간 7.41% 하락하면서 경기권에서 가장 큰 하락폭을 보이고 있다. 올해 6810가구를 비롯해 2020년까지 총 2만1574가구가 입주할 예정인 데다 인근 화성 송산신도시와 시흥 배곧신도시 등에서도 최근 몇 년 새 아파트 입주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고잔동 고잔주공8단지 전용 54㎡는 2년 전만 해도 1억6000만원 선에서 전세계약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1억1000만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전용 61㎡ 또한 2년 새 전셋값이 4000만원가량 빠지면서 1억2000만원 선에 전세 매물이 나와 있다.
신규 입주단지 전셋값도 하락세다. 안산 고잔동에서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고잔 롯데캐슬 골드파크 전용 59㎡는 전셋값이 2억1000만원까지 내렸고, 이달 집들이를 하는 힐스테이트 중앙은 전용 74㎡가 2억6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안산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기존 아파트는 2년 전에 비해 5000만원가량 하락했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공실이 많다"면서 "중앙주공 아파트의 경우 마지막 거래가 10월 20일에 이뤄졌으며 그마저도 6000만원가량 내린 가격에 계약됐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신축 아파트는 기존아파트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힐스테이트 중앙의 경우 지난달 말 전용 59㎡가 2억4000만원에 계약됐는데 사실 이 물건은 3억원대에 팔려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안산뿐 아니라 새 집이 늘고 있는 경기도 용인·평택·파주 등도 전세가격이 하향조정되고 있다. 지난 7월 입주한 파주 운정신도시 힐스테이트 운정 아파트의 경우 400여건의 전세 매물이 쌓이면서 전용 59㎡ 전셋값이 1억8000만원 선에 머물러 있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평택시 용죽동 평택비전3차푸르지오 전용 73㎡의 경우 전셋값이 1억8000만원까지 떨어졌으나 세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또한 지난 6월 입주한 용인시 처인구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 전용 84㎡는 1억4000만원 선에 전셋값이 형성됐지만 아직까지 불 꺼진 아파트가 단지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규 단지를 찾아 세입자들이 계속 유입됐지만 지금은 세입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데다 일부 수도권 신도시에서는 단기간에 워낙 공급이 많이 이뤄지면서 역전세난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입주단지 수백건씩 전세매물 적체··· 꽉 막힌 거래시장
임대수요가 풍부해 그간 거래가 잘 이뤄졌던 서울에서도 입주단지를 중심으로 물건 적체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달 입주를 진행하는 강남구 일원동 래미안 루체하임은 포털 상에서 세입자를 구하는 전세매물이 1000건을 훌쩍 넘겼다. 전체 가구 수가 850가구인 점을 감안할 때 중복매물이 많아 부풀려진 숫자이지만 전·월세 거래가 활발히 일어나지는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과 서대문구 남가좌동 DMC2차아이파크도 전세물량이 각각 973건, 1128건이 포털에 등록돼 있다. 또한 내년 1월 입주가 예정된 은평구 베라힐즈도 794건의 전세물량이 쌓여 있다.
일원동에 위치한 D공인 관계자는 "신규 입주장사를 많이 해봤는데 올해는 확실히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다"며 "이 때문에 전세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는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규 입주를 앞둔 단지에선 일시적으로 전세 매물이 늘고 시중에서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서 시세보다 전셋값이 낮아지는 경우가 나타난다. 최근에는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 탓에 새 아파트 집주인들이 중도금 대출(이자)과 잔금을 충당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전세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세입자들도 전세자금대출 규제와 집값 하향세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전셋집이나 내집 마련을 포기하고 기존에 살던 주택에 눌러앉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전에 비해 전세물량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서울의 경우 대기수요가 풍부하기 때문에 가격이 하향조정되면서 거래시장이 다시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전셋값이 많이 하락하게 되면 대출을 많이 받은 집주인일 경우 계약만료 이후에도 전세금을 돌려주기가 힘든 역전세난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서울·수도권 각각 4만2000가구, 19만6000가구 집들이··· 전세가격 약세 지속될 듯
전문가들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수도권에 예정된 입주물량이 많다는 점을 들어 당분간 전세가격이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입주물량은 3만6504가구(예정 포함)로 전년 2만7890가구보다 27.3%가 많다. 수도권도 같은 기간 17만5268가구에서 22만5442가구로 28.6% 증가했다. 내년에도 서울은 올해 대비 16.3% 많은 4만2445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수도권은 19만6367가구로 올해보다는 적지만 2017년 대비 많은 수준이다. 전국적으로는 △2017년 38만5973가구 △2018년 45만1042가구 △2019년 38만2212가구로 3년 평균 40만 가구가 입주하거나 입주를 앞두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세가격 변동률이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하향세를 나타내고 있다"면서 "서울지역도 입주물량이 쏟아진 곳을 중심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고, 강남권도 보합세를 보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큰 요인은 공급물량이 많다는 것인데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상반기까지는 전셋값이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