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7~9월)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 5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의 평균 성장률이 5개 분기 만에 4%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면서 동남아 신흥국 경제의 성장둔화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는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통계를 인용, 이들 5개국의 3분기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 평균치가 4.5%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1년 전의 5.5%에서 1% 포인트나 낮아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싱가포르는 제조업 경기 악화 여파로 3분기 2.2% 성장률을 보이며, 2분기의 4.1%에서 거의 반토막이 났다.
태국 역시 올해 3분기 성장률이 3.3%에 머물면서 2분기의 4.6%에서 둔화됐다. 태국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을 정도로 수출 의존도가 높다. 특히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수요 둔화로 3분기 수출이 전년 대비 0.1% 감소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태국 최대 산업재 회사인 시암시멘트의 룽로테 랑시요파시 CEO는 “무역전쟁이 계속되면서 올해 3분기 수출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미·중 갈등은 무역 파트너의 수입 정책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국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역시 수출 둔화 여파로 3분기 성장률이 각각 5.17%와 4.4%로 둔화됐다. 필리핀은 3분기 6.1% 성장률을 기록, 전분기보다 0.1% 포인트 하락했다.
이례적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수혜국으로 떠오른 베트남의 경우 3분기 성장률이 전년 대비 6.88%로 2분기의 6.73%에서 소폭 올랐다. 닛케이는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중국의 제조기지가 베트남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쉽사리 낙관적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면서 중국의 수요를 짓누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소비지출 증가세가 꺾이는 등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무역 선행지표도 동남아 수출의 추가 둔화를 신호하고 있다. 닛케이가 동남아 7개국을 대상으로 집계하는 동남아 구매관리자지수(PMI)에서 10월 신규 주문지수는 2016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다.
싱가포르 소재 미즈호은행의 미시누 바라탄 이코노미스트는 닛케이를 통해 무역전쟁뿐 아니라 미국의 금리인상이 달러 강세를 유발, 신흥국 화폐 가치를 끌어내려 소비와 투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경제 붕괴까지 갈 가능성은 무척 낮지만 4분기에도 성장률 둔화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다만 컨설팅업체 베인앤코의 사티시 산카르 동남아지사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동남아 국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카르 이사는 최근 CNBC 스쿼크박스에 출연해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동남아에서 중국과 미국을 향하는 수출이 즉각 타격을 입을 수는 있겠지만 동남아가 중국을 대체할 매력적인 제조업 기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이는 장기적으로 동남아에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동남아로 공장을 옮기고 기술을 이전하면서 동남아는 잠재적으로 1조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기회를 얻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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