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연구개발비를 판매관리비가 아닌 자산으로 구분하는 것이 금융당국 지침으로 공식 인정되면서, 연구 중심인 바이오업체 또는 벤처업체가 사실상 ‘영업이익’ 등 재무제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상장유지요건특례가 예고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23일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바이오업체 올해 3분기 누계 연구개발비에 대한 자산화 비율은 아예 없는 경우부터 80%까지 다양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신라젠과 큐리언트 등은 신약개발에 투자한 연구비 중 단 1원도 자산화(무형자산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테라젠이텍스도 34억5000만원 중 2.1%인 7300만원만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연구개발비는 재무제표 상 판매관리비에 포함돼 영업이익을 낮춘다. 때문에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면 영업손실을 피하고 영업이익을 높일 수 있다. 연구개발에 따른 성과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해석에 따른 것인데, 이는 해외에서도 활용된다.
외부 투자가 중요한 바이오업체는 안정적인 실적구조를 꾸미기 위해 그동안 이같은 방식을 활용해왔다. 그러나 국내에서 자산화가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일자, 금융당국이 개입해 기준을 마련했다. 신약은 3상 임상시험부터, 바이오시밀러는 1상 임상시험부터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내용 핵심이다.
앞서 언급한 신라젠은 3상 임상 단계 신약후보물질을 갖고 있고, 별도재무제표 기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166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지침 상으로는 연구개발비 일부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해 영업손실을 낮출 수도 있다. 그러나 신라젠은 모두 판관비로 처리했다.
이는 영업손실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크지 않다는 것으로도 여겨질 수 있다. 더욱이 바이오업계는 이번 논란과 금융당국 개입으로 ‘신약개발 투자로 인한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대외적 명분과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또는 금융당국 기준과 달리 연구개발비는 모두 판관비로 처리해야 한다는 신라젠 자체 원칙이 작용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각 업체마다 재무제표 작성기준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영업이익·영업손실은 바이오업체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로서 한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바이오업체인 바이로메드와 셀트리온은 자산화 비율이 비교적 높았다. 바이로메드는 연구비 243억2200만원 중 79.8%에 달하는 194억2100만원을, 셀트리온은 연구비 1858억5500만원 중 67%인 1245억2000만원을 각각 무형자산으로 포함시켰다. 메디포스트는 80억원6700만원 중 64.8%인 52억2600만원을 각각 자산화했다.
다른 바이오업체도 자산화 비율은 다양하다. 메디톡스는 자산화 비율이 169억원 중 24억원으로 14.1%에 그쳤다. 이외 씨티씨바이오 33.7%, 삼성바이오로직스 28.9%, 코오롱생명과학 28.4%, 강스템바이오텍 20.2%, 차바이오텍 19.4%, 이수앱지스 16.3% 등은 자산화 비율에 차이를 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업체 영업손실은 연구개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 오히려 이번 논란을 통해 확신됐고, 이번에 설정된 금융당국 기준 내에서 바이오업체마다 연구개발비 자산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영업이익 지표는 이전보다 영향력이 적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제약·바이오산업은 장기간 모험자본이 필요한 대표적인 고위험·고수익 분야”라면서 “신약개발에는 평균적으로 15년간 1조원 이상의 연구개발비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상장유지요건 특례를 올해 중 마련해 제약·바이오업체에서 4년간 영업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기술성이 있고 연구개발 투자가 많은 기업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신약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상장기업이 매출액 요건 등 상장유지요건 충족을 위해 비주력사업을 병행하는 등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금융위는 관련 제도 개선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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