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로앤피] ‘가스라이팅’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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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주 변호사·기자
입력 2018-11-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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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스라이팅…위력에 의한 성폭력·데이트폭력


Q. 올해는 유난히 성 관련 이슈가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의 멘토로 알려진 소위 ‘나침반 목사’의 성추문이 폭로되기도 했었고,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은 그야말로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있다고 하는데요. 생소한 단어네요. ‘가스라이팅’이라는 게 뭔가요?

A.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모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자존감과 판단능력을 해쳐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오래된 연극에서 유래가 됐습니다.

Q. 그렇군요, 어떤 내용의 연극인가요?

A. 연극 가스등에는 남편과 아내가 등장합니다.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오히려 아내를 탓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 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국 남편에게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Q. 그렇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등이 대표적인 가스라이팅 사례로 볼 수 있겠네요.

A. 그렇습니다. 그래서 안희정 사건을 가스라이팅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이유입니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가 언론에서 진술한 말 기억하시나요?

Q. 어떤 말을 말씀하시는 거죠?

A. “다 잊어라. 항상 잊으라는 얘기를 저한테 했기 때문에 내가 잊어야 하는 구나. 그래서 저한테는 있는 기억이지만 없는 기억으로 살아가려고 그렇게 다 도려냈다”
이렇게 피해자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안 전 지사의 지배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Q. ‘가스라이팅’ 새로운 시각인데요, 우리 법체계도 이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나요?

A. 최근 상담을 했던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얼마 전 명예훼손죄로 처벌 받은 뒤에, 억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A씨가 찾아왔습니다. 하는 말이 “내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 그런데 억울한 부분이 있다”라는 겁니다.

Q. 뭐가 억울하다고 하던가요?

A. 본인이 명예훼손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귀던 남자친구한테서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겁니다.

A씨는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비정상적인 관계를 요구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남친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했는데, 거절한 뒤에는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 언행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자책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이렇게 길들였고, 또 그의 전 여자친구를 수소문해서 알아봤는데, 비슷한 수법이 계속 있었다며 가스라이팅을 입증할 수 있는 많은 증거가 있다고 했습니다.

Q. A씨 말이 사실이라면,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가 있겠네요. 그렇다면, A씨는 가스라이팅을 근거로 소송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우리 법의 입장은 어떤가요?

A. 불법행위에서는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A씨가 증거가 있다고는 했는데, 실제 살펴보닌까, 내밀한 관계 속에서 이뤄진 가스라이팅의 고의·과실을 입증하기에는 역부족인 증거들이었습니다.
또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선 가스라이팅의 위법성이 인정돼야 한다. 개념도 낮선 가스라이팅에 대해 법원이 당장 위법성을 인정할지도 의문입니다.

그렇군요, 가스라이팅을 근거로는 법적 책임 묻기가 어려워 보이네요. 오늘 처음 접하게 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 이 새로운 개념이 우리 사회에 어떤 식으로 자리잡는 지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늘의로앤피였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진행: 조현미 아주경제 정치사회부 차장/출연: 장승주 변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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