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악몽'에서 벗어난 듯했던 미국 뉴욕증시가 다시 곤두박질쳤다. '안전한 시장'으로 여겨지는 채권시장에서 강력한 경기침체 신호가 감지된 탓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3% 넘게 추락했다. 다우지수는 3.10%, 무려 80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고, S&P500지수는 3.24%, 나스닥지수는 2.33% 내렸다. 경기에 민감한 금융, 교통 관련 업종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 휴전에 따른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게 악재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나는 관세맨(Tariff Man)"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위대한 부(富)를 침해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관세싸움 지속 의지를 내비쳤다. 트럼프는 "(관세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중 폭탄관세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보다 채권시장의 경고에 더 주목했다. 단기 채권과 장기 채권의 수익률(금리)이 역전된 게 문제였다. 시장에서는 이를 대표적인 경기침체 신호로 본다.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수익률이 높다. 만기가 길어지면 위험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 채권과 장기 채권의 수익률 차이(장기 채권 수익률-단기 채권 수익률)를 나타내는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게 보통이다.
문제는 수익률 곡선이 최근 계속 평평해지더니 일부가 아예 꺾였다는 점이다. 전날 3년물과 5년물, 2년물과 5년물의 수익률 곡선이 차례로 역전됐다. 만기가 짧은 국채의 수익률이 뛰면서 수익률 차이가 마이너스(-)가 됐다는 얘기다. 200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시장에서 단기·장기 국채 기준물로 삼는 2년물과 10년물의 수익률 차이도 점점 줄어, 이날 0.12%포인트를 밑돌았다. 이 역시 2007년 이후 최저치다.
시장에서는 수익률 곡선의 역전을 경기침체의 전조로 본다. 미국 국채 단기물이 장기물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건 미국 정부가 장기로 빌린 돈보다 단기로 낸 빚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위험이 임박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60년간 경기침체가 닥치기 전에 수익률 곡선 역전이 일어났다는 게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의 분석이다. 샌프란시스코 연은은 지난 3월에 낸 보고서에서 "(수익률 곡선의 역전은) 1955년 이후 일어난 9번의 경기침체에 모두 정확한 신호를 보냈다"며 1960년대 중반에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는데 당시 수익률 곡선 역전 뒤에는 공식적인 경기침체가 아닌 경기둔화가 뒤따랐다고 지적했다. 2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해야 공식적인 경기침체가 된다. 어찌 됐든 단기 국채와 장기 국채의 수익률 차이가 좁아지고, 궁극적으로 역전되는 건 틀림없는 경기불안 신호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투자자들이 이미 세계 경제 성장둔화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역풍을 우려해왔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가운데 일본과 독일 경제도 지난 3분기에 역성장하면서 우려를 자극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는 수익률 곡선의 경기 예측력 연구로 유명한 아르투로 에스트렐라 전 뉴욕 연은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수익률 곡선 흐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수익률 곡선이 평평해지거나 역전되면 9~15개월, 평균 1년 안에 경기침체가 닥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은)가 이달 이후에도 계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2·10 만기 미국 국채의 수익률이 역전될 게 자명하고, 이는 경제에 불길한 징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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