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지난달 개봉한 이후 6일 200만 관객을 기록했다.[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업자 및 장기실업자 IMF 이후 최대, 경기선행지수 연속 하락 IMF 이후 최장, 건설투자 IMF 이후 최저, 제조업공장 가동률 IMF 이후 최저...”
현재 한국경제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저'나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라 붙은 게 예삿일이 돼 버렸다.
외환위기 상황을 닮아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위기 10주기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국민적인 불안감을 씻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200만명의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바라보지 않는다.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하방 압력이 높아지고 경제 불확실성이 누적되고 있지만, 위기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위기설을 일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 역시 최근 “고용지표 등이 부진하고 민생경기도 어려워서 엄중하게 보고 있다”면서도 “올해의 어려움이 내년에 금방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지금의 경제상황이 경제 침체나 위기라고 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로 확산된 우려를 곧바로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공통된 시각인 셈이다.
◆외환위기 시절 닮아가는 경제지표들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데는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각종 경제지표의 부진 탓이 크다. 외환위기 상황과 비교할 때 상당히 근접한 지표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제1정책 목표인 일자리 실적부터 비교대상이 된다. 올들어 3분기 기준 실업자수는 106만5000명으로 외환위기의 후폭풍을 맞은 1999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올해 3분기에 실업자가 100만명 대로 올라선 것도 1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의 경우에도, 올 들어 1∼9월 평균 15만2000명으로 집계돼 관련통계가 작성된 1999년 6월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외환위기 직후 2000년 같은 기간보다도 1만명이 더 많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추정하는 한국 경기선행지수(CLI)도 지난 9월 18개월 연속 하락해 5년11개월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외환위기 시기인 1999년 9월~2001년 4월(20개월 연속 하락) 이후 최장 기간 하락한 셈이다. 경기하강에 대한 뚜렷한 징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이 0%대에 머문 가운데, 건설투자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건설투자 증가율을 보면, 지난 2분기 -2.1%에서 3분기 -6.4%로 주저앉았다. 이는 1998년 2분기(-6.5%)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고꾸라진 상황이다.
올해 1~9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의 경우, 지난해 1~9월과 같은 수준인 72.8%에 달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1998년 66.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제조업 위기가 2년 연속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외환위기와는 결이 다르다“
각종 경제지표에 적색등이 켜지고 있지만, 21년 전 IMF 외환위기 당시와 경제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외환위기의 결정타였던 외환보유액을 봐도,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에는 어렵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4029억9000만 달러로, 한 달 전보다 2억4000만 달러가 늘었다. 지난 9월 4030억 달러로 역대 최대수준을 찍었던 만큼, 외환 안정성이 높다는 게 정부와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1997년 12월 39억 달러에 그친 외환보유액과 비교하면 무려 103배 규모에 달할 정도다.
3분기말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도 31.8% 수준이어서, 1997년 말 286.1% 수준과는 대조적이다. 현재 외환보유액으로 단기외채를 3번이나 갚을 정도의 여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여기에 1997년말까지 금융권 부실 총계 1조원 이상인 상황에서 부도를 맞은 △한보 △진로 △기아 △해태 △뉴코아 등을 보면, 과다한 부채의존도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평가된다. 호황만을 염두에 둔 기업의 과도한 부채가 외환위기 속 한국경제의 침체를 가속화했다는 얘기다.
이와 달리, 최근 들어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을 보면, 과거 외환위기 당시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재무건전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매출 기준 1000대 상장기업의 올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부채총액/자기자본)은 평균 174%로 집계됐다. 1997년 당시 1000대 상장기업의 부채비율이 589%였던 것과 비교하면 기업 부실화가 상당부분 개선된 셈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와 지금을 살펴보면, 현재는 상당히 개방된 경제구조를 구축해 놓은 상황이고, 주요 기업 주식의 상당부분을 외국인이 보유한 상황”이라며 “즉각적으로 시장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예전의 폭탄처럼 터져버린 경제위기 사태가 발생하기에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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