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의 총수일가가 여전히 책임경영보다는 지배력 확대와 사익편취를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규제를 피해 총수 본인의 이사 등재는 기피하고, 일감몰아주기 회사 및 사각지대 회사에 대한 2·3세의 이사 등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의 사외이사나 위원회는 아직도 '거수기' 노릇만 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소액주주 역시 제 목소리를 내기에는 한계가 뒤따랐다.
◆총수 2·3세, 지배력 및 사익편취 회사 등재이사 집중
공정거래위원회가 6일 공개한 '2018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 있는 49개 집단의 소속회사 1774개 가운데 총수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386개(21.8%)인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55개사로 8.7%에 그칠 뿐이다.
이번 현황은 올해 지정된 공시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60개 가운데 신규 지정된 3개와 특별법으로 설립된 농협 이외의 56개 집단 소속회사 1884개가 분석 대상이다.
총수일가 이사 등재 비율이 높은 곳은 △셀트리온(88.9%) △KCC(82.4%) △부영(79.2%) △SM(72.3%) △세아(66.7%) 순이다. 반면 낮은 곳은 △미래에셋(0.0%) △DB(0.0%) △한화(1.3%) △삼성(3.2%) △태광(4.2%) 순으로 나타났다.
공정위에 따르면,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 비율은 2015년 18.4%에서 올해 15%대까지 낮아졌다. 총수 본인이 전혀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집단은 14개(28.6%, 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두산·CJ·대림·미래에셋·효성·태광·이랜드·DB·동국제강·하이트진로·한솔)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8개사는 2·3세 역시 이사 등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총수일가가 등기임원을 맡지 않을 경우,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반면, 경영권은 행사할 수 있다. 책임경영보다는 지배력만 갖춰놓겠다는 속셈이다.
이들은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거나, 사익편취에 집중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386개사는 △주력회사(46.7%) △지배구조 정점인 지주회사(86.4%)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65.4%) 등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회사 대비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인 21.8%보다도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총수 2·3세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97개) 가운데 75.3%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52개) 및 사익편취 규제대상을 피해가는 '사각지대' 회사(21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152개에 달하는 공익법인에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59개 공익법인의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은 78%에 달한 반면,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93개의 공익법인의 등재 비율은 39.8% 수준에 그친다. 공익법인을 통한 지배력 강화에 총수일가가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총수일가 견제장치, 사실상 '제로상태'
기업이 내부 감시자 역할을 하도록 사외이사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거수기' 역할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56개 집단 소속 253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787명에 달해 전체 이사의 50.1% 수준이다. 이들의 이사회 참석률은 무려 95.3%로 겉보기엔 적극적인 감시자로 통한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최근 1년간(작년 5년∼올해 4월) 이사회 안건 5984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겨우 0.43%인 26건에 그쳤다.
원안 통과 비율은 무려 99.57%로 사외이사가 감시자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 810건 모두 부결 없이 통과됐다.
여기에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두고 있는 상장사 위원회의 경우, 최근 1년간 1501건의 상정 안건 중 8건만 부결했을 뿐이다. 내부통제장치로 마련한 내부거래위원회는 안건의 100%를 원안 가결했다.
특히 공정위가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 295건을 분석한 결과, 수의계약을 하고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안건은 81.7%에 달할 정도다. 그야말로 깜깜이 위원회인 셈이다.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늘어난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최근 1년간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대기업집단 소속 211개 상장사의 주주총회(안건 총 1362건)에 참석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있는 주식 대비 행사한 의결권 비율을 보면, 73.8%였으며 이 중 찬성과 반대는 각각 89.7%, 10.3%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소수주주를 위한 제도가 시행되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는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집중투표제(2명 이상 이사 선임 때 주주에게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는 253개 상장사 중 4.4%인 11개사가 도입한 상황이지만, 실제 행사된 경우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배구조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경영의 책임성, 투명성 차원에서 보면 실질적인 작동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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