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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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입력 2018-12-1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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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지난 11월 중순 지역발전에 기여한 중소기업들에 이베이코리아가 상을 주는 ‘e-마케팅페어’라는 행사가 열렸다.

이때 휠체어를 탄 한 중년 신사가 눈에 띄었다. 대상을 수상한 ‘장애인장학사업장’의 김재필 대표였다. 199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후 기초수급자로 절망 속에 살다가 아들이 대학을 간 그해에 사회적기업을 차려 장애인과 고령자 5명을 고용하고 있다.

“장애 유형에 따라 각각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깁니다. 지체장애 부장님은 영업과 홍보를 맡아 학교에 팸플릿을 돌리고 뇌병변 직원은 재택근무를 하는데 스스로 포토샵을 공부해서 상품페이지를 만들고 홈페이지 관리를 합니다. 지적장애 직원은 상품분류를 하고요.”

김 대표의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다. 일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일을 맞춘 셈이다. 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이니까 가능했겠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개인으로 존중하는 게 과연 ‘사회적기업’만이 전담해야 할 영역일까?

협동조합 무의가 만드는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비장애인도 모두 휠체어를 타고 현장을 가보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휠체어에게 편하면 모두에게 편하다’는 것을 리서치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1980년대 장애인들이 ‘지하철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휠체어는 오지 마’라는 통념을 거부하고, ‘우리도 지하철을 탈 수 있게 이동수단을 갖춰 달라’며 줄기차게 시위한 결과 생긴 결과물이라는 점을. 이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고령자, 유모차, 짐 가진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한다. 이런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장애인 욕구를 반영했더니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된 셈이다.

내가 근무 중인 이베이코리아에서는 한국 최초로 유통업체-제조업체가 함께 만드는 유니버설 디자인 의류를 출시했다. 휠체어 이용자가 쉽게 입을 수 있도록 허리에는 고무줄을 넣고 밸크로로 앞여밈을 한 바지 촬영을 하던 사진작가가 말한다. “이거 앉았다 일어났다 많이 해야 하는 제게 딱이네요!” 이번에는 어깨에 밸크로 처리를 해서 입고 벗기 편하게 만든 셔츠를 보고 비장애인 모델이 말했다. “화장이 안 묻어서 좋아요.”

놀라운 발견의 순간이었다. 휠체어 타는 아이에게 기성복 바지를 입히며 땀을 뻘뻘 흘리던 내 경험을 토대로 ‘옷에 사람을 맞추는 대신 사람에게 옷을 맞출 수는 없을까’라는 소망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휠체어 이용자와 비장애인 가족과 친구들이 다 함께 같이 입을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탄생한 셈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정부 주도 하에 활발하게 연구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올해 8월 행정안전부에서는 공공청사에 적용할 유니버설디자인 안내책자를 발간했다. 장애인, 고령자, 어린이, 임산부, 외국인 등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한 시설 건물 가이드다. 공공청사를 위한 가이드지만, 일반 건물을 지을 때도 참고할 만하다. 지난 11월에는 서울시가 무장애 관광서비스 매뉴얼과 동영상을 공개했다. 교통, 숙박, 식당 등 서비스 종사자에게 관광약자 응대법을 교육하는 내용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서비스 버전인 셈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회사 업무(소셜 임팩트)와 개인 프로젝트(지하철 환승지도 제작)를 통해 장애인을 ‘다른 종류의 서비스 욕구를 가진 소비자’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매일 배우고 있다. 정부와 민간 모두의 노력을 통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더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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