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정조준한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제2 ZTE’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중 양국이 지난 1일(현지시각) 무역전쟁 90일 '휴전'을 선언하자마자 화웨이 창업주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는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미국 측 요청에 의해 체포되면서다. 대이란 제제 위반 혐의로 체포된 멍 부회장은 미국 측 요청에 따라 미국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 'ZTE 사태' 판박이···화웨이도 굴복시키나
이는 지난 4월 터졌던 ‘ZTE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은 대이란제재 위반 혐의로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해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를 금지시켰다. 제재가 풀리기까지 약 석달간 영업 활동이 전면 중단된 ZTE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겉으론 대이란 제재 위반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미국이 중국 기술굴기를 억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화웨이는 ZTE보다 더 강력한 중국 5세대 통신(5G) 굴기를 이끌고 있는 대표 기업이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화웨이를 정조준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각 동맹국에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 장비 '보이콧'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는 등의 방식으로 화웨이를 경계해 왔다.
왕이웨이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7일 홍콩 명보를 통해 "5G 통신 네트워크는 미래 핵심경쟁산업 중 하나”라며 “전 세계 5G 대전에서 화웨이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여러 선진국을 제치고 절대적인 우위를 보였다"고 전했다. 중국이 5G 방면에서 주도권을 가지면서 미국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왕 교수는 "미국은 런정페이 회장의 후계자가 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는 멍완저우 CFO에 대해 대 이란제재 위반 혐의를 구실로 삼아 ZTE 사태와 마찬가지로 화웨이를 제재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앞서 미국은 ZTE에 대해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 교체, 미국 측 인력으로 구성된 준법 감시팀 배치 등을 요구해 최종적으로 제재를 풀어줬다"며 ZTE 제재 때와 마찬가지로 화웨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 美 화웨이 제재 오래갈까···오전장에서만 11조원 시총 '증발'
시장은 심지어 이번 화웨이 사태가 ZTE 제재 때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롼쯔시 중국 판하이증권 투자전략 이사는 "ZTE 사태 때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며 "화웨이 관련 종목 투자에 신중할 것"을 조언했다.
실제로 그동안 무역전쟁 휴전 기대감에 상승곡선을 탔던 글로벌 증시는 지난 6일 갑작스럽게 터진 '화웨이 악재'로 일제히 고꾸라졌다. 중국 본토와 홍콩 증시에서만 이날 오전장에서만 화웨이 핵심 공급부품업체 관련 종목 시가총액이 700억 위안(약 11조3000억원) 증발했다고 중국 온라인 경제매체 진룽제(金融街)는 보도했다.
전체 매출에서 화웨이 의존도가 22%에 달하는 광학부품 업체 서니옵티칼은 이날 홍콩 증시에서 주가가 5.47% 하락했다. 스피커 부품 공급업체인 AAC 테크놀로지도 5.59% 하락했다. 이밖에 중국 반도체업체 SIMC(-3.89%),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란쓰과기(-4%),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징둥팡(-2.14%), 폭스콘 인더스트리얼 인터넷(-2.76%) 등이 대표적인 화웨이 부품 공급업체다.
◆ 연간 반도체 수입량 15조원···대부분 미국·유럽업체들
화웨이는 사실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중국 '기술굴기'를 선도하는 대표주자다. 산하에 하이실리콘이라는 반도체 회사도 만들어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조달하고 있다. 이는 전체 부품의 20~30%를 해외에 의존하는 ZTE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실제로 국신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하이실리콘은 지재권을 가진 반도체 칩 20여종을 개발했으며, 관련 특허 출원 수도 5000여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의 연간 반도체칩 수입량은 140억 달러(약 15조6000억원)에 달한다. 하이실리콘이 직접 연구개발한 자체 프로세서 '기린' 역시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의 설계도 라이선스를 따와서 만든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화웨이 부품 공급업체 2000여개 중 30% 이상이 반도체칩 납품업체로, 퀄컴, 브로드컴, 인텔 등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산하 시장조사업체 싸이디즈쿠(賽迪智庫)에 따르면 2015년 화웨이 반도체 수입액은 140억 달러다. 구체적으로 퀄컴(18억 달러), 인텔(6억8000만 달러), 마이크론(5억8000만 달러), 브로드컴(6억 달러), 자이링스(5억6000만 달러) 텍사스인스트루번트(4억 달러) 등으로, 대부분이 미국,유럽 반도체 회사들이다.
하지만 화웨이는 자체 혁신기술력을 보유한 만큼 미국의 제재에 ZTE처럼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7일 사평에서 "화웨이가 제2의 ZTE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화웨이가 이번 리스크를 슬기롭게 잘 대처해 나갈 것으로, 미국의 압박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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