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병원·학교까지 동원, 中 지방부채 숨바꼭질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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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1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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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명의로 대출, 고가 의료장비도 팔아

  • 재무관료 "지방정부 투명망토 걸쳐" 토로

  • 무역전쟁에 미봉책 대응, 부메랑 우려 커

[그래픽=이재호 기자]


"지난해 새로 준공한 아이롄 광장은 사치스럽고 지나치게 넓다. 광장 안에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6개의 돌기둥을 세우는 데 120만 위안(약 2억원)을 들였다. 광장에서 맞은편 현(縣)정부로 이어지는 길에 심은 은행나무 고목 6그루의 가격은 무려 285만 위안(약 4억6500만원)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 후난성의 감찰반이 관내 루청(汝城)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작성한 보고서 내용 중 일부다.

감찰반은 "루청현은 기본적인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다 경제·산업 발전을 위한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루청현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336%로 후난성에서 가장 높았다. 2015년 274%, 2016년 286% 등으로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어디 루청현뿐이겠는가. 급증하는 지방 부채가 국가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지만 지방정부의 빚잔치는 그칠 줄 모른다.

자금 차입 방식도 갈수록 교묘해지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면서 중국 정부가 디레버리징(부채 감축) 속도 조절이라는 미봉책을 내놓은 것도 우려스럽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방정부 편법 자금 유치 '천태만상'

일부 지방정부는 편법적인 자금 끌어 모으기에 관내 학교와 병원까지 동원하고 있다. 최근 구이저우성 내 한 도시는 공립 학교 명의로 10억 위안 이상의 대출을 받은 게 들통나 곤욕을 치렀다.

후난성의 한 현급 도시는 한술 더 떠 2015~2017년 학교·병원 등을 앞세워 20억 위안을 빌리게 한 뒤 지방정부 예산으로 전용했다. 이들 학교와 병원이 대출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12곳의 융자 중개회사 신설을 승인해주기도 했다.

지방 금융권 관계자는 "병원이 기존에 소유 중이던 자기공명영상(MRI)·전산화단층영상(CT) 장비 등을 의료장비 임대 회사에 매각해 마련한 돈을 지방정부에 전달하는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병원은 그 장비를 임대 회사로부터 다시 빌려 사용하는 사실상의 세일즈 앤드 리스백(매각 후 재임차) 방식"이라며 "의료장비 매각 자금은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국유 건설사 등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방정부가 발행한 보증장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융통하는 방식은 적발되기 쉬워 중간에 융자 중개회사를 다수 끼워넣는 방식도 유행이다.

이럴 경우 자금 추적이 쉽지 않다. 재무부 소속으로 후난성에 파견된 샤오샹(肖翔) 감찰 전문요원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자와의 대화 중 "자금 차입 주체와 차입 방식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며 "지방정부가 투명 망토를 입고 있는 듯하다"고 토로했다.

사업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 토목·건축 프로젝트가 첨단 민관협력사업(PPP)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지방정부의 압박 혹은 회유를 통해 금융기관이 해당 PPP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기금 조성에 투자자로 참여하고 배당을 받는데, 결국 대출을 해주고 이자 수입을 올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중국 국무원 산하 회계감사기구인 심계서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기재돼 있다.

동북 지역의 한 지방정부는 도시 미화 사업을 빈곤 탈출 프로젝트로 포장하고 사업 증명서까지 발급했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1억2000만 위안을 유치한 게 적발돼 처벌을 받았다.

◆올 들어서만 지방부채 315조원 급증

편법과 불법이 횡행하면서 지방 부채 규모는 확대일로다.

재정부가 발표한 지난 10월 말 현재 지방 부채 잔액은 18조4043억 위안(약 3000조원)으로 올 들어서만 1조9337억 위안(약 315조2000억원)이 더 늘었다.

중앙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부터 지방 부채 관련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해 왔다. 2015년 1월부터는 지방정부의 채권 발행을 허용하고 고리의 채무를 저리의 지방채로 상환하도록 했다.

지난해 PPP 프로젝트의 최저 수익 보장이나 채무 상환 보장 등을 금지하고 사업성이 낮은 프로젝트는 폐기하도록 지시한 데 이어 올해는 아예 PPP를 활용한 자금 조달 자체를 금지했다.

지난 3월 재정부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대해 지방채 매입 외의 방식으로 지방정부에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했다. 지방 국유기업을 통한 간접 대출도 막았다.

다만 미·중 무역전쟁 발발로 상황이 좀 바뀌었다.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 둔화에 지방정부의 유동성 부족 위기까지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디레버리징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지방정부에 대한 금융권 대출은 여전히 막고 있지만 지방채 발행에는 관대해진 분위기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8월 특별채권 형식의 지방채 발행을 장려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채권 발행으로 유치한 자금을 인프라 사업 등에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 탓인지 6월 말 16조7997억 위안이었던 지방 부채 잔액은 8월 말 17조6684억 위안, 9월 말 18조2592억 위안 등으로 급증세를 보였다.

올해 지방정부 특별채권 발행 한도가 1조3500억 위안인데 10월 말 기준 달성률이 98%로 집계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위장되거나 은닉된 지방 부채의 경우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이 안 되는 실정이다.

인중칭(尹中卿) 전국인민대표대회 재경위원회 부주임은 "지방정부가 은닉·위장한 부채가 최소 20조 위안"이라며 공식적인 지방 부채 통계가 절반 이하로 과소 측정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중국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규모를 40조 위안으로 추산했다. 인 부주임이 제시한 금액의 2배다.

◆업적 쌓기 경쟁에 신음하는 지방정부

인구 35만명의 루청현은 국가에서 지정해 관리하는 빈곤촌이다. 지난해 1인당 가처분 소득은 1만2544위안(약 200만원)에 불과하다.

일반 예산수입은 7억3558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1억8830만 위안 감소했다. 민생 사업 투자는 2억6166만 위안으로 57.4% 줄었는데 부동산 개발 투자는 10억5347만 위안으로 41.6% 급증했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의 성과는※ 지도자의 업적으로 인식된다. 열악한 재정 환경에도 대규모 토목·건축 사업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빚잔치를 벌여 입신양명에 성공한 사례도 드물지 않다. 롼청파(阮成发) 윈난성 성장은 후베이성 토박이다. 나고 자란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7년 시장에 오른 뒤부터 대대적인 토목·건축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한을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꿔놓은 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 당서기로 승진하고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우한을 시찰할 때 차관급 관료로는 이례적으로 직접 수행을 하기도 했다.

우한을 이끄는 동안 '만청와(滿城挖· 도시 전체를 파헤친다)', '미스터 불도저' 등의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2016년 윈난성으로 떠났다. 이후 윈난성 부성장과 대리성장을 거쳐 지난해 성장으로 임명됐다.

롼청파는 대부분의 지방관료들이 선망하는 길을 걷고 있지만 우한은 엄청난 부채에 짓눌려 있다. 우한 중심가의 125층 뤼디센터는 상처뿐인 영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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