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옵스펠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퇴임 기자회견에서 세계 경제 성장둔화 움직임이 당초 예상보다 더 강력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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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옵스펠드는 연말 퇴임에 앞서 이날 가진 회견에서 "미국 밖의 성장둔화가 그 조짐으로 볼 때 더 극적"이라고 말했다. WSJ는 옵스펠드가 IMF의 지난 10월 경제전망보고서보다 경기진단을 더 낮춘 셈이라고 풀이했다.
IMF는 10월에 낸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0.2% 포인트 낮은 3.7%로 제시했다. IMF가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건 2016년 7월 이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IMF는 당시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 성장세를 '꾸준하다(steady)'거나 '안정적(plateauing)'이라고 평가했다.
옵스펠드는 그나마 미국이 강력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지만, 세계적인 하강기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봤다. 내년부터 미국의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미국 이외의) 나머지 세계는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미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옵스펠드는 안 그래도 미국 경제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재정지출 확대 효과 저하로 내년과 내후년에 계속 성장둔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친성장 재정정책을 거둬들이거나 정책 기조를 뒤집을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세계 경제의 부진이 더해지면 미국의 성장둔화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옵스펠드는 아시아와 유럽의 부진이 이미 미국 정책 전망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독일의 성장률이 지난 3분기에 마이너스로 꺾인 게 대표적인 악재로 꼽혔다. FT는 무역전쟁, 금융시장 불안 등이 맞물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마저 경기 하방위험을 놓고 논의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옵스펠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돼 연준이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대응하는 게 '악몽의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최근 연준의 발언과 시장의 기대로 보면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는 2개월 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옵스펠드는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캠퍼스) 교수 출신으로, 2015년 9월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후임으로 IMF에 합류했다. 그는 당시 IMF의 다자주의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날은 "정말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경제 관계에서 갈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옵스펠드는 미·중 무역갈등이 여전히 고조되고 있다며, 중국을 국제사회의 틀로 유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성장세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더 개방하고, 시장에 더 큰 역할을 맡기는 것은 물론 위안화 유연성을 높일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이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개방을 확대하고 지식재산권 체제를 개혁하는 건 스스로에게 좋을 뿐 아니라 서방도 불만을 삼아온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옵스펠드는 최근 무역전쟁 등에 따른 세계화의 역전 조짐이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세계 무역·경제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10월 옵스펠드 후임으로 기타 고피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지명했다. 인도 출신으로 미국 국적을 동시에 가진 기타 고피나트는 환율, 무역·투자, 금융위기, 통화정책, 부채, 신흥시장 위기 등에 정통한 경제학자다. IMF에서는 사상 첫 여성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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