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김정은 서울행 ‘高위험 高수익’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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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입력 2018-1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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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겸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문재인 대통령의 희망대로 연말이든 연초든 성사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그는 북한의 최고 통치권자가 된 이후 ‘위험을 감수하는(risk-taking)'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투자자에 비유하면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을 즐기는 타입이다.

긍정적, 부정적 의미에서 모두 그렇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집권 후 4차례 핵실험을 했고 미국을 자극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핵무력이 완성됐다고 판단한 시점부터는 미국, 한국 등 적대 국가와 과거 아버지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과감한 태도로 협상에 나서고 있다.

김정일은 중국, 러시아 외에는 외국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겁냈다. 반면에 김정은은 중국 비행기를 빌려 타고 싱가포르에 가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70년 은둔 국가 북한의 처지에서는 깜짝 놀랄 리스크 테이킹이었다. 북한 건국 이후 최고 지도자의 첫 공식 방남(訪南)은 세계적인 이목을 끌면서 김 위원장으로선 챙길 게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에서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는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서울에서는 환영 군중 동원이 불가능하다. 반면에 보수단체 회원들은 김 위원장의 동선(動線)에서 그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퍼포먼스와 시위를 할 것이다. 북에서 김 위원장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 존엄’이다. 김 위원장이 남에 와서 이런 수모를 받는 것은 북에서의 최고 존엄의 아우라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런 정도의 리스크는 각오하고 올 것이다. 얼마 전 북한을 다녀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 길거리에 김 위원장을 환영하는 인파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 때로는 반대 데모대가 길거리에 나오리라는 것을 북한의 핵심인사들이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한 것 같은 카 퍼레이드만 안 한다면 경호 과정에서 돌발사태가 생기기 어렵고 격렬한 데모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

그는 서울 방문을 통해 국제사회에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주면서 미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수행원이나 북한 인민에게 ‘적지(敵地)에서도 끄떡 않는 용감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보좌진 중 한 사람은 “북에서는 주로 나이 든 원로들이 김 위원장의 방남을 반대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남쪽에 다녀간 동생 김여정과 김영철의 의견도 들어봤을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피붙이인 김여정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방남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가.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을 내년 1, 2월경 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남 시기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이라고 봐야 한다. 김 위원장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온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도 듣고 싶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공군1호기 안에서 산적한 경제 현안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고 남·북·미 관계와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을 중심으로 답변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위해 온갖 공을 들이는 문 대통령에 대해 ‘방남 구걸’이라는 비난을 한다. 북이 3차에 걸친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지 않는 마당에 4차 정상회담과 서울 답방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의 보좌진 중 한 사람은 “보수정권 9년 동안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북의 핵무기만 늘어났다. 자기들은 한 게 뭐 있는가. 어떻게든 김 위원장을 설득하고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해 비핵화 프로세스에 진입시키려는 노력을 두고 방남 구걸 운운하는 것은 온당한 시각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경호 때문에 깜짝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든 그는 아버지가 못 갔던 길을 더듬어 찾아가고 있다. 비핵화와 제재 헤제를 둘러싼 북·미 협상이 경색 국면에 접어들면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진의(眞意)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그가 이제 와서 다른 선택을 하기도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김일성대학을 나온 북한문제 전문가는 “드론을 비롯한 첨단 신무기의 존재 앞에서 김 위원장이 핵만 가지고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북한 경제발전이라는 큰 꿈을 갖고 있지만 제재 해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교환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가 트럼프를 두 번째 만나기에 앞서 서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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