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지트 파텔 인도중앙은행(RBI) 총재가 임기를 9개월 남겨놓고 사임했다. 파텔 총리는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개인적 이유로 현재 직위에서 즉시 물러난다고 발표해 시장과 정부를 모두 충격에 빠뜨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파텔 총재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11일 결과가 발표되는 주의회 선거와 내년 총선 등으로 안그래도 불안한 인도 금융시장을 더 휘저어 놓고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 "파텔이 떠난 시장 금융불안 심화"
파텔 총리의 사임 소식에 당장 환율과 주식 시장은 흔들렸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0일 달러-루피 환율은 무려 1.95%가 상승했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2018년 초 달러당 60 루피 초반이었던 환율은 최근 70달러 초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무역전쟁과 국내 경제 불안 등으로 약세를 보이던 루피가 '파텔 쇼크'로 더 주저앉은 것이다.
인도 주식시장 연동 ETF 중 가장 규모가 큰 아이셰어스 MSCI 인디아 ETF도 2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인도의 니프티 50 인덱스 선물은 하락폭이 3.5%까지 이르렀다. 이같은 금융시장의 불안은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반영한다고 마켓워치는 지적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날 트위터에 "파텔 총재가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텔 총리의 사임은 인도 정부와 RBI 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대부분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RBI 전 부총재였던 R. 간디는 "돌아보면 이것(파텔 총재의 사임)은 내겐 놀라운 일은 아니다"면서 "정부와 RBI의 입장 차는 공공연한 것이었고, 이것이 표출됐을 뿐이다"라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야시완트 신하 인도 전 재무장관은 역시 CNBC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임은 정부가 RBI의 직무를 방해하려고 한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중앙은행 매파적 입장 누그러 들 것…거시경제 타격 불가피 지적도
파텔 총재는 취임 초기에는 지난 2016년 11월 단행된 인도 정부의 고액권 유통금지 정책에 지지를 표하면서 친 정부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인도의 물가상승 및 은행 시스템 정비와 악성부채 해결 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원하는 바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올해 6월 RBI는 4년 반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했으며, 8월에도 또 한 차례를 금리를 올렸다. 물가 상승을 막고 악성 금융부채를 줄인다는 목표로 인상을 단행했다. RBI는 지난 5일 금리를 동결했지만 여전히 중앙은행이 '긴축적'이라는 입장은 바꾸지 않은 바 있다. 또한 은행 시스템 정비를 위해 재정상태가 취약한 국영은행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5월 총선을 앞둔 모디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 변화를 중앙은행에 주문해왔다. 지난달 인도 독립이후 한번도 발동된 바 없는 RBI법 7조를 근거로 유동성, 대출규제, 금리 등과 관련해 권한 행사 내용이 담긴 서신을 RBI 총재에게 보내기까지 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RBI법 7조는 이 법은 공익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정부가 중앙은행에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규제완화와 금리인하 압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파탈 총재의 사임으로 모디 정부는 파텔보다는 덜 매파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을 RBI 수장에 앉힐 가능성이 높으며, 인도의 기준 금리가 인하될 수도 있다고 외신은 전망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조치가 거시경제의 안정적 유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비랄 아차르치야 RBI 부총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 될 경우 금융시장과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결국 정부는 규제 완화를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캐나다 칼튼 대학의 비벡 데헤자 (Vivek Dehejia) 경제학 교수 파텔 총재의 사임에 대해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득이 있을 지 몰라도 이는 장기적으로 경제정책 신뢰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면서 "이날은 인도와 튼튼한 경제에 비극적인 날이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지적했다.
한편 블룸버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는 2018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면서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중앙은행 비판, 터키, 영국 등에서 정치인들의 중앙은행 압박이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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