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사임한다."
지난 3월 이같은 말을 남기고 사임한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에 이어 11일 김명우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 9개월여 만에 같은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은 두산중공업에 '임원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명우 사장, 이른 사임
앞서 3월 김 사장은 정지택 전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실적 부진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임함에 따라 최형희 부사장(재무관리부문장)과 함께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된 바 있다. 사장에 오른 지 1년도 채 안돼 자리에서 내려 온 셈이다.
그가 보낸 메일에는 그간의 고민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김 사장은 "민영화 직후 극심한 갈등과 진통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기업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것에서부터 중공업계 최고의 입사 선호기업으로 거듭난 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과 기술개발 투자, 해외 수주 10조원을 돌파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회사에 대한 자긍심으로 남아 있다"며 "지금은 일시적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상황이 호전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돌이켜보면 회사는 과거에 이보다 더 큰 어려움과 위기를 여러 번 겪었지만 모두 극복해 왔다"며 "여러분들의 저력, 두산의 지혜와 뚝심으로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앞서 3월 말 사임 의사를 밝힌 정지택 전 부회장의 사퇴의 변과도 판박이다.
당시 정 전 부회장은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17년 만에 보통주에 대한 무배당 결정을 밝히고 "주주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후, 기자들과 만나 "책임을 질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떠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김 사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물러날 줄은 몰랐다"며 "업계에선 회사 상황이 예상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당분간 박지원·최형희 '2인 체제'...첩첩산중
김 사장의 이번 사임으로 두산중공업은 기존 3인 체제에서 박지원 회장, 최형희 재무관리부문장(부사장) '2인 체제'로 전환한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김 사장이 이사회에서 사임을 밝히고 물러나는 것이 순서이지만, 이미 이를 공식화한 만큼 업무에서 즉각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후임자가 올 때 까지 박지원 회장과 최형희 부사장은 본래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두마차에서 이두마차로 축소된 두산중공업은 앞으로 험로가 예상된다. 회사가 지난해 말 일부 BG(사업부문)를 통합하고, 내년부터 과장급 이상 전 사원을 대상으로 2개월 유급휴직을 시행키로 하는 등 자구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회사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글로벌 발전·플랜트 시장도 좋지 않다.
실제 2017년 별도 기준 두산중공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각각 7.4%, 33.8% 급감했고, 올해 9월 말 기준 단기차입금은 3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을 이끌어야 할 최형희 부사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것"이라며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이상 회사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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